트레즈북 베타테스트

한 달 동안 진행되는 베타테스터 활동을 이제야 시작하며

by 단휘

“하나, 둘, 셋… 이 정도씩 일곱 칸이면… 대충 이삼백 권 되겠다.”


소셜 독서 서비스 트레즈북의 베타테스터 신청을 하며 방에 있는 책을 대충 세어 보았을 때의 계산이다. 그리고 베타테스트 기간이 되어 바코드를 하나하나 찍어야 할 날이 왔다. 모든 책을 다 찍기보다는 잘 읽었던 책과 앞으로 읽을 책 위주로 먼저 찍어 보기로 했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는 책들에 대한 나름의 Todo-list처럼 쌓아두고서 그 흔적을 이 어플에 남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48권. 그렇게 등록된 책의 수. 고작 48권? 그러니까 내 방에 있는 이 책들 중에서 나에게 유의미한 가치로 존재하는 책이 고작 48권? 물론 등록되지 못한 책 중 일부는 ISBN을 발급받지 못한 독립출판물이니 논외라고 쳐도, 책장에서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이리도 많단 말인가. 『읽기의 말들』(박종, 도서출판 유유)의 45번째 문장에서 말한다. [예전엔 책은 많이 소유할수록 좋은 유일한 사물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안다. 책장 역시 비워도 좋다는 것을. 스페인 속담은 “책과 친구는 수가 적고 좋아야 한다”고 부추긴다.] 그리고 허균의 『한정록』에서 “인생에 쓸모 있는 책은 단지 몇 종류를 숙독하면 되네. 비유하자면 중국의 한나라 고조가 천하를 취할 적에 가장 뜻이 맞았던 사람은 소하와 장량과 한신 등에 불과했지”라는 말을 인용한다. 46번째 문장에서 말하듯 [어렵사리 갖춘 책장을 미분하고 또 미분하면 무엇이 남을까?] 내 책장에 가진 책들을 한 번 미분해 보니 진짜 읽는 책은 책장 한 칸으로 충분하더라. 아직 읽지 못해 그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운 책도 많이 있으니, 언젠가 한 번 더 미분해 보면 이보다도 상당히 많이 줄어 있으리라.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책을 많이 읽는 녀석은 아니다. 10대 시절까지는 오히려 책 읽기를 거부해 왔다. 대학 전공 서적으로 책이랑 친해지기 시작한 미묘한 입장인데, 전공 서적이라고 해봤자 IT 분야의 기술 서적이다. 소프트웨어 공학이 어쩌고 컴퓨터 구조가 어쩌고 하는 책을 마주하며 책이랑 친해지기 시작했다는 녀석은 흔치 않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인문학 서적도 조금씩 건드리게 되었고 그래도 책을 조금쯤은 읽는 녀석이 되었는데, 그 구체적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복잡한 인간 관계와 심리를 쫓아가기가 힘들어 여전히 소설책은 잘 안 건드리게 되지만 그래도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내 관심을 끄는 녀석들은 조금씩 건드려 보려고 한다.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는 어디까지나 나의 주장일 뿐, 애초에 별로 접해 본 게 없다 보니 장르에 대한 개념이 와닿지 않는다. 당장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장르를 물어봐도 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무렴 어때. 일단은 책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단계니까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해 본다.


하여간 언제부터인가 서울국제도서전에 매년 찾아가 충동적인 소비를 하고 오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녀석은 어찌 되었건 베타테스터 활동을 시작해 본다. 내 방뿐만 아니라 거실에도 책은 많이 있으니 책 등록하는 건 조만간 또 몰아서 하기로 하고, 어플을 전체적으로 둘러본다. 기본적으로 베타테스터 미션은 다음과 같다.


앱 내 책 등록하기 → 개인 소장 도서 100권 이상 등록하기
앱 내 책 속 문장 기록하기 → 인상 깊은 책 속 문장 10개 이상 등록하기
앱 내 서평 작성하기 → 인생책 추천 서평 1개 이상 등록하기


필수 미션 완료 후 보상 신청 설문지를 작성해서 4월 18일까지 제출하면 출판 업무 노션 템플릿을 보내준다는 모양이다. 커피 기프티콘 같은 보상보다도 이게 더 흥미가 간다. 베타테스터 모집할 때 관련 업계 종사자 위주로 타겟팅을 했던 만큼 그들이 관심 가질 만한 보상을 제시한다. 안내 페이지에 나와 있는 노션 템플릿의 샘플 이미지를 보니 꽤 괜찮아 보이더라. 보상 신청 설문지에는 앱 사용 경험에 대한 의견이나 앱에 추가되거나 개선되었으면 하는 기능이 있다면 적을 수 있도록 설문 문항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 때 가서 생각하면 잘 떠오르지 않을 듯하여 나의 노션 [일정 기록] 데이터베이스에 [트레즈북 베타테스터] 페이지를 만들어 그곳에 내용을 쌓아두고 있다. 요 며칠 건드려보며 작성한 건 7가지 정도?


활동 기간은 3월 14일부터 4월 14일까지 한 달인데, 나는 활동 기간이 시작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서야 활동을 시작했다. 아직 기간은 많이 남았으니까 내 템포대로 책을 읽으며 조금씩 기록을 남기면 충분할 것 같다. 교육 받으러 다녀오는 편도 50분, 도합 100분 동안 매일 꾸준히 책을 읽고 있으니 문장 기록은 금방 채워질 것이다. 책을 읽다 말고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맣아 읽는 속도가 조금 느린 편이긴 하지만 몇 주의 시간이면 10개 정도야 금방 채우겠지. 그리고 적당한 때에 또 몰아서 책 등록을 하면 어렵지 않게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독서 어플 이것저것 많던데 이 녀석의 차별화 포인트가 무엇인가 하면, 다른 어플들은 “[내]가 읽은 책”을 다루는 반면 트레즈북은 “내가 읽은 [책]”을 다루는 느낌이다. 내가 읽은 것들을 그저 쌓아가는 게 아니라, 그 책을 기반으로 한 소셜 미디어 느낌? 아직 베타 버전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그 책을 소장하여 ISBN을 등록한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는 채팅 기능 등 트레즈북이 추구하는 바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이곳에 쌓여가는 독서 기록이 내가 읽은 여러 책들 중 one-of-them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책을 읽은 여러 독자들 중 one-of-them이 된다는 관점으로 책을 중심에 둔다는 점이 흥미롭더라.


매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책을 몇 권씩 입양해 오고, 때로는 중고서점을 기웃거리다가 또 몇 놈 데려오면서도 독서는 언젠가의 미래로 미뤄둔 채 책을 인테리어 취급하는 일이 많은데, 이 어플을 이것저것 건드려 보고 괜찮다 싶으면 이곳에 정착해 나의 흔적을 남겨봐야겠다. 그럭저럭 괜찮은 계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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