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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차

2025년 2월 14일 금요일 갑진년 무인월 갑인일 음력 1월 17일

by 단휘

차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허브티든 밀크티든 전체적으로 말이다. 차와 커피 중 하나를 고르라면 큰 고민 없이 전자를 택하곤 한다. 그렇다고 차에 대해 잘 아는 건 또 아닌데, 그건 내가 차의 풍미를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창 코로나가 유행일 때 알게 되었는데 나의 평소 후각은 코로나에 걸린 사람의 후각과 크게 다르지 않더라. 나는 섬세한 향의 차이를 인지할 수 있는 역량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차를 좋아한다지만 이 차는 향이 어떻고 맛이 어떻고를 논할 수 없다. 사실 그냥 맹물이 잘 안 넘어가는데 마실 수 있는 가장 만만한 게 차이기 때문에 차를 선호하게 된 것 같다.


내가 가진 것 중에는 루이보스 베이스의 블렌딩 티가 가장 많다. 언젠가 루이보스를 베이스로 다양한 블렌딩을 시도하는 브랜드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데 그 시기에 관심 가는 제품을 종종 구매하곤 했다. 그리고 허브티는 내가 산 건 아니고 선물 받았던 건데, 지금 보니까 유통기한이 조금 지나 있다. 물을 끓여 와서 차를 우리는 그 단순한 작업조차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질 정도의 무기력했던 지난 몇 년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것들도 썩 안녕하지 못할 것 같은데... 조만간 전체적으로 상태를 한 번 확인해야겠다.


홍차 베이스의 차 또한 대체로 내가 산 것보다는 받은 것들인데, 아무래도 난 물 대신 마실 만한 녀석을 필요로 하는 거였다 보니 카페인 프리 제품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주변에서는 그냥 차를 자주 마시는 녀석이니 이것도 좋아하겠지, 하고 준 것 같지만 말이다. 뭐, 홍차를 안 먹는 건 아니고 덜 선호하는 거니까 아무래도 상관없긴 하다.


한참 안 마시다가 최근에 다시 차를 꺼내 들었다. 내 책장 한 구석이 차로 채워져 있지만 너무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었다. 티백보다는 병에 든 차가 많은데, 정확히는 티백 중에는 내가 산 게 없다. 아마 가족이 어디서 얻었는데 자기는 잘 안 마신다고 던져두고 간 게 나의 티백 중 반은 차지할 것이다. 하여간 티백보다는 병에 든 녀석이 더 많다 보니 차망을 사용하는데, 무기력이 심해지면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린 뒤 차망을 헹구고 하는 그 모든 부차적인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그래도 요즘은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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