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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과일

2025년 2월 13일 목요일 을사년 무인월 계축일 음력 1월 16일

by 단휘

나는 그 들쩍지근한 덩어리들에 거부감이 있다. 어릴 땐 잘 먹었던 것 같긴 한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생겨 버렸다. 아마 먹고 싶지 않은 때에도 의무적으로 먹게 한 게 그리 만들었던 것 아닐까 싶다. 지금은 그런 게 다 사라졌지만 어릴 때까지만 해도 1년에 몇 번씩 차례 및 제사를 지냈고 할머니가 손이 크셔서 그 음식의 양도 많았다. 그것을 다 먹을 때쯤 다음번 차례나 제사를 준비하러 가야 해서 거의 먹어 치우는 느낌이었다. 비단 과일뿐만 아니라 명절 음식도 대체로 안 좋아하는데 그것도 다 비슷한 이유 아닐까 싶다.


제사 지내는 횟수를 줄이고 최종적으로 차례와 제사를 안 지내고 명절에도 안 모이게 되었을 때도 과일에 대한 의무는 사라지지 않았다. 안 먹고 싶다는데도 인당 몇 조각씩 필수라며 들이밀었다. 입에다가 억지로 집어넣고는 침 닿았으니까 먹으라고 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도 싫다고 했는데 내 방에 접시를 두고 가더라. 마음 같아서는 접시째 집어던지고만 싶었다. 그것은 집이라는 곳은 나의 의사가 존중받지 못하는 곳이라는 느낌을 야기한다. 결국 아침부터 짜증과 불만을 느끼며 방치하다가 집에서 나서기 전에 적당히 냉장고에 넣어두고 나갔다. 그런 게 내 방에서 썩어 문드러져서 좋을 건 없으니 말이다.


물론 비타민이니 무기질이니 식이섬유니 하면서 과일을 먹어야 한다고 하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게 먹기 싫다는 걸 억지로 먹게 할 만큼의 무언가인가. 과일이 아니라면 섭취할 수 없는 무언가인가. 그런 불만이다. 그 들쩍지근하고 때로는 끈적거리며 감당 안 되기도 하는 덩어리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그것들은 냉장고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따로 구매하지 않아도 명절 언저리에는 어디서 자꾸 상자 단위로 보내준다는 모양이다. 결국 또 신선도가 떨어지기 전에 먹어치워야 하는 것들이 쌓여 간다.


누군가 좋아하는 과일을 물을 때면 그런 거 안 좋아한다고 말하곤 한다. 안 좋아한다고 하는데도 그중에서도 그래도 고르자면 뭐가 가장 낫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더라. 그런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높은 확률로 상대가 불편해하며 회피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캐물을 사람이다. 두더집 커뮤니티에서 그런 사람을 마주한 적 있었다. 그나마 선호하는 과일이 용과라고 했더니 이후 모임 때 시장에서 샀다며 용과를 들이밀더라. 카페에서 그런 걸 들이밀면 당장 처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걸 온전한 상태로 집에 가져갈 자신도 없고, 애초에 "그나마"의 영역이고 그다지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정말 감당 안되지만 일단 감사하다며 받긴 했다. 물론 온전한 상태로 집에 가져가지 못해 조금도 먹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졌지만.


역시 과일에 대한 기억치고 좋은 기억이 없다. 디저트류에도 과일이 조금 섞여 있는 것까지는 거부감이 없지만 그것이 과하면 안 먹고 싶어진다. 요즘 유행하는 식의 과일 듬뿍 넘쳐 흐름의 느낌보다는 넣은 건지 만 건지 싶을 정도로 어쩌다 한 번씩 느껴지는 게 훨씬 낫다. 그 유명한 성심당 딸기타르트와 딸기시루를 마주했을 때도 그랬다. 결국 딸기타르트는 끝까지 손도 안 대고 딸기시루는 조금 맛봤을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다음주의 딸기케이크도 딸기가 너무 과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라고 혼자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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