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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인터넷

2025년 2월 18일 화요일 을사년 무인월 무오일 음력 1월 21일

by 단휘

"인터넷 자아와 현실 자아의 자아 통합을 이루려고요." 대부분이 익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흔치 않게 닉네임과 본명을 병기하고 있는 지인이 말했다. 너무 오랫동안 분리되어 있던 자아를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으로 통합하고 싶다고. 생각해 보면 그래,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10여 년 전의 트위터에서 살던 나 자신을 "꼬마 네온이"라고 3인칭으로 부를 정도로 나는 자아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지만.


나 또한 오랜 시간을 인터넷에서 살아온 녀석이다. 중학생쯤부터 나는 현실보다는 인터넷에서 살아왔다. 트위터뿐만 아니라 이제는 잊힌 미투데이나 라인 같은 플랫폼도 맴돌았다. 어느 정도 가치가 보이는 소셜 미디어는 일단 가입하고 보는 버릇은 클럽하우스를 마지막으로 벗어났지만. (벗어나지 않았다면 스레드 계정도 만들고 이것저것 계정이 넘쳐나는 녀석이 되었을 거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주요 서식지는 트위터였다. 라인은 좀 더 사적인 피드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라인 사용자들이 다들 카카오톡으로 떠나가고 거의 혼자만의 공간이 되었다가 나도 어느 순간 그만뒀다.


이곳저곳에 분산되어 있는 나의 계정을 줄이고 쓰는 것만 남기기로 마음먹은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사용할 계정과 버릴 계정을 구분하고 사용할 계정의 정보를 최신화했던 흔적을 보니 그 작업을 한지 반 년도 채 되지 않았다. 레거시 계정들은 계정을 삭제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로그인하지 않아 누군가 말을 걸어도 더 이상 응답하지 않는다. 서비스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영구 휴면 계정들이 차지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 공간들이 자원 낭비겠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지는 않으련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N년 동안 방치되어 있는 계정의 정보를 날린다고 하면 그땐 자연스럽게 보내줘야지. 일단은 내 손으로 날리고 싶지는 않다.


나의 소셜 미디어 계정들이 쓰고 있는 닉네임은 그 계정을 언제 만들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기존에 만들어 놓은 것의 닉네임을 굳이 수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20대 중반부터의 계정들은 대체로 다니일 기반의 닉네임으로 고정되었다. 기본형인 다니일부터 애칭인 다냐, 다닐루쉬카 등의 이름이다. 이곳에서 쓰는 이름도 크게 보면 다니일 기반의 이름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단휘가 먼저 있었고 그 이후에 다냐가 있었으며 그다음에야 다냐를 애칭으로 쓰는 기본형 이름인 다니일까지 사용하게 된 거지만. 단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옥편을 찾아가며 자캐에게 지어준 이름이었는데 왠지 마음에 들어서 내가 쓰다가 여기까지 왔다. 내 본명에서 따온 이름이라 나름의 애착이 있는 이름이긴 하다.


개인적으로 서로 다른 분야의 피드가 섞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분야별로 모아서 보고 싶어서 계정 분리를 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같은 플랫폼에 계정이 여러 개 있기도 하다. 인터넷 자아 A와 인터넷 자아 B의 자아 통합이 안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대학생 때는 그게 좀 심했다. "단휘"와 "백금"을 완전히 별개의 자아 취급했다. 그때도 투폰유저였는데 그것을 메인/서브로 나누지 않고 단휘용/백금용으로 나누었으니. 그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그 영향은 아직까지도 좀 남아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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