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7일 목요일 을사년 무인월 정묘일 음력 1월 30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걸 대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니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는 걸 듣는 걸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서너 명이 모여서 대화할 때 그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두세 명의 상대가 서로 대화하는 걸 들으며 가끔 한두 마디 하는 게 익숙하다. 둘이서 대화를 하면 보통 침묵 속에서 가끔 대화가 오가거나, 상대가 침묵을 못 견디는 성향을 가졌을 경우에는 그 사람이 애써 대화 주제를 찾는 게 보인다. 난 그렇게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고자 애쓰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침묵을 유지하다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내뱉는 편을 선호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화와 생각을 동시에 하지 못한다. 무의식의 영역에서야 다양한 것들이 흘러가고 있겠지만, 의식의 영역에서 무언가 생각을 하면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가벼운 대화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바로 말로 내뱉을 수 있어 문제없이 흘러가지만, 조금 생각할 거리가 들어가면 상대의 말에 대답하기까지 약간의 시간 지연이 발생하곤 한다. 그런 특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친구들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꽤나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려고 하면 띄엄띄엄 자주 쉬어가며 이야기하게 된다. 두서없이 말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괜히 긴장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긴장하는 순간이 내가 인지하는 나의 목소리 톤에 변화가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건 여담. 듣자 하니 다른 경우에도 목소리 톤에 변화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모양인데 나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하여간 생각을 하면서 내뱉는 말이 상당히 어색하기 때문에 썩 즐기진 않는데, 그러다 보니 그걸 할 수 있는 능력이 잘 안 키워지는 악순환이 있는 것 같다.
들으면서 생각하는 게 잘 안된다는 것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다가도 종종 느끼던 부분이다. 각자 무언가 적는 시간을 줘 놓고 강사가 계속 관련 내용을 중얼거리고 있으면 나는 적어야 할 내용에 대해 잘 생각하지 못한다. 생각을 하라고 해놓고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다니. 놓쳐도 되는 말을 하고 계시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음악이 틀어져 있어도 불필요한 청각 자극에 의식이 분산되어 생각을 잘 못 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음악 자극은 그래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강사 님 말씀은 필요한 이야기도 있을 수 있으니 마냥 차단하지는 못하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멀티가 되는 건지 아니면 그냥 강사 님 말씀을 안 듣고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하다 보면 늘겠거니 싶다가도,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서도 편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는 흔치 않다. 어쩌면 말이 잘 통하고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할 수 있는 친구 한두 명 정도 있는 게 행복한 삶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 이의 존재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