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56 정신없음

2025년 2월 26일 수요일 을사년 무인월 병인일 음력 1월 29일

by 단휘

누가 그런 걸 좋아하겠냐마는, 정신없는 상태는 썩 유쾌하지 않다. 보드게임에서 트롤링을 하여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의도된 정신없음이라 즐기는 편이지만, 일상에서의 의도되지 않은 정신없음은 꽤나 힘들다. 내가 잘 버티지 못하는 정신없음의 대표적인 사례로 마감 직전에 과제를 아직 다 끝내지 못해 급하게 처리하는 상황이 있다. 누군가는 마감 직전의 심리적 압박이 능률을 높여준다며 마감 직전에 일처리를 하는 걸 선호한다는데, 나는 반대다. 마감이 다가오고 촉박하다고 느껴질수록 불안함과 불편한 감각들이 몰려오며 나를 방해한다.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과제를 빠르게 끝내서 제출해 버리면 열심히 사는 녀석으로 오해받곤 하지만 평판에 나쁘지 않은 소문이므로 굳이 정정하지 않고 놔두곤 한다.


가끔 모종의 이유로 할 일이 밀리며 정신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학생 때의 과제처럼 뚜렷한 마감일이 있어 반드시 그때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고 개인적인 작업물의 연속일 뿐이지만, 그렇게 밀리기 시작하면 썩 유쾌하지 않다. 오늘 몫까지 나흘 치가 밀려 있는 작업을 보면 괜히 착잡해진다거나. 기술교육원 입학 전에 끝내는 게 목표였는데 이대로는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며칠 밀린 것을 어제 좀 처리하려고 했는데 와이파이 이슈로 작업을 전혀 하지 못했다. 와이파이가 뜨긴 하는데 연결할 수 없다고 뜨는 날도 많았는데 어제는 아예 연결 가능한 목록에 센터 와이파이 자체가 보이지 않더라. 와이파이에 대한 문의를 하다가 괜히 센터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 논의나 살짝 나눴다.


요즘은 개인 일정이 밀려 있는 상태에서 프로그램 참여도 곳곳에 섞여 있고, 다음 주부터는 기술교육원이 하루 중 큰 부분을 차지할 예정이라 더 정신이 없다. 나의 개인 일정에 대해 무엇을 먼저 하고 어느 것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혼란을 느끼곤 한다. 당장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하루 일정을 적기 시작한 건데, 그런 보조 수단을 이용해도 혼란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럴 땐 어떻게든 일단 시작해서 항목을 줄이는 게 최선이기에 하루 일정에 적당히 되는 대로 일정을 끼워 넣는다. 그 작업을 할 최적의 시공간이 아닐 수도 있고 순서와 배치가 애매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대상 항목을 두어 개라도 줄이고 나면 상대적으로 덜 정신없기에 그 다음날 일정부터는 약간은 더 최적에 가까운 상태로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정신없는 상황에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만나면 적절히 대처하기 힘들다. 그런 변수로 인해 계획했던 나의 일정이 훼손되는 상황을 꺼려하며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유해졌다. 당장 당일 오후 일정도 파악되지 않는 일이 잦았던 극단 활동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그런 걸로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은 결국 마찰을 일으키다 극단을 나가거나 거기에 어느 정도 맞춰갈 수 있도록 성향이 바뀐 듯하다. 전보다 많이 유해진 상태에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그곳의 일정은 상당히 혼란 그 자체이긴 했다. 내가 본 그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그곳을 넘어서는 곳은 없었으니.


그래도 큰 변수만 없다면 밀려 있는 것들로 인한 정신없는 상황은 이번 주 중으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정확히는 다음 주 월요일에 있는 공휴일까지 포함이다. 하루 연장되는 걸로 끝나는 거면 그럭저럭 잘 흘러온 것 같다. 그리고 역시 이번 주에도 게임 따위를 할 여유는 없겠군. 단 하루 플레이하고 방치되어 있는 나의 플레이 스테이션은 나를 조금만 더 기다려 주길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55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