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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다이어리

2025년 2월 28일 금요일 을사년 무인월 무진일 음력 3월 1일

by 단휘

얼마 전에 다이어리를 받았다. 다이어리를 본격적으로 쓸 사람이라면 연말에 미리 준비해서 1월부터 사용했을 텐데 2월 말에 다이어리라니. 쓸 사람들은 이미 하나씩 장만해서 쓰고 있고 안 쓸 사람들은 어차피 안 쓰기에 줘도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애매한 시기다. 다이어리 사용을 고려조차 안 하고 있던 경우에는 2월 말이나 3월 초부터라도 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는 있겠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다이이리를 일기장 용도로 쓰다가 고등학생 어느 시점부터 잘 안 쓰게 되었다. 일이 년 정도 다이어리는 있지만 채워진 내용은 거의 없는 상태를 지속하다가 결국에는 아예 다이어리를 장만하지 않았다. 연말이 되면 가족이 어디서 받아온 신년 다이어리들을 들이밀며 관심 있냐고 물어봤지만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거절하곤 했다. 그러다 지난 연말에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사용할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보여주는 대여섯 가지 다이어리를 검토한 후, 2025년 다이어리 하나를 챙기고 만년형 다이어리 하나를 여분으로 챙겼다. 만년형 다이어리의 경우 나중에 2026년 다이어리 후보로 포함시켜 다시 검토할 수 있으니 일단 놔둔 거였다. 어차피 내 취향 1순위로 선정되지 못한 녀석이고 그렇기에 내년에도 선정되지 못할 확률이 높아, 다이어리를 쓰면 좋을 것 같은 친구 녀석에게 선물로 줘버렸지만.


요즘은 10여 년 전처럼 일기장 용도로 쓰고 있지는 않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시간대별 대략적인 일정을 왼쪽에 적어놓고 오른쪽에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 기록한다. 시간대별 구획을 나누면 하단에 몇 줄 정도 여백이 남는데, 그 부분은 따로 메모할 게 있을 때 메모하는 용도로 남겨 두었다. 무언가 하지 못한 핑계를 적어놓기도 하고, 오프더레코드의 주저리를 적어놓기도 한다. 대체로 빈칸으로 남겨두는 날들이 더 많지만 말이다. 하여간 다이어리를 오랜만에 쓰는 것치고는 그럭저럭 잘 사용하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누락된 날이 이미 열흘쯤 있는 건 무시하도록 하자.


그런 와중에 청년기지개센터 2025 오리엔테이션에서 또 탁상 달력과 다이어리를 받았다. 나는 주간 계획은 잘 안 세우는 편이고 일간 계획만 쓰기에 월간/일간으로만 이루어진 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새로 받은 이 녀석은 월간/주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가 평소에 쓰는 방식으로는 완전히 기각이다. 그런데 만년형이 아닌 다이어리는 어차피 그 해가 끝나면 쓰고 버려지든 안 쓰고 버려지든 결국 못 쓰게 되잖아? 뭐라도 끄적여 볼까 하다가 언젠가 다른 청년 분들과 함께 하다가 흐지부지된 감사 일기 쓰기 모임이 생각났다. 그때는 태블릿으로 쓸 수 있는 양식을 사용했는데, 이 다이어리를 감사일기 전용으로 써도 좋을 것 같다. 주간 계획 부분에 한두 마디씩 쓰면 괜찮지 않을까. 탁상 달력도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 주 단위 할 일 목록으로 되어 있어서 흥미롭더라. 보통은 이런 데서 받은 거 잘 안 쓰는데 올해는 한 번 써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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