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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심리적 부채감

2025년 3월 1일 토요일 을사년 무인월 기사일 음력 2월 2일

by 단휘

티는 안 내려고 하지만 가끔 심리적 부채감을 느끼는 상대가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미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이제 와서는 내 주변에 '임지현'이나 '차주성' 같은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있기나 할까. 그들 이후의 사람들은 아직 주변에 그들을 아는 사람이 남아 있으니 굳이 실명 거론을 하지 않겠다. 청년이음센터 출신의 청년 중에는 내가 심리적 부채감을 느끼는 사람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조심스럽게 대하며 혹시라도 상처 주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남들보다 유독 신경 쓰게 되는 청년도 있다. 청년기지개센터는 3월에 오리엔테이션을 들을 예정이라던데. 그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조심스럽게 대할 이유는 없는데 나의 무의식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


그렇게 간접적인 부채감이 아닌, 내가 심리적 부채감을 느끼는 당사자인 청년도 한 명 있다. 결국 어제마저도 난 그에게 상처를 주고 만 것 같지만. 그리고 몇 가지,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생겼다. 때로는 내 머릿속으로만 판단하고 넘기지 말고 상대에게 내뱉으면 좋을 말들도 있는데, 말을 해야 상대도 알 텐데, 나는 왜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잘 표현하지 못할까. 누군가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오해를 하고 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정보로도 오해가 어느 정도 풀릴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난 왜 '그것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하고 생각만 하고 말았을까. 그 사람이 자신이 한 오해로 인해 스스로를 공격하고 있을 게 뻔한데, 언젠가 그에게 도움을 받아놓고 난 결국 그의 고통을 방관했다.


누군가의 능력이 새삼 또 부러워지기도 한다. 이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 긴가민가 해서 조심스럽게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걸었는데 반응이 없길래 아닌가 보다 했는데, 그냥 내가 너무 작게 웅얼거려서 못 들었던 모양이다. 이후에 그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들어 보니 내가 자신을 모른 척하는 것 같아 조금 상처받은 모양이다. 내가 사람을 좀 더 잘 알아봤다면 그를 그렇게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을 텐데. 주지 않아도 될 상처를 준 것 같아 또 심리적 부채감이 쌓여 간다. (나에게 부족한 타인의 능력 중 가장 부러워하는 게 사람 잘 알아보는 능력이랑 신체 능력이랑 주변을 스캔하는 능력인데, 그중 둘을 가진 녀석이 자신의 무능을 주장할 때면 얼탱이가 없다.)


그런 거 하나하나에 자책하며 심리적 부채감을 쌓아가서 뭐 하겠냐마는. 머리로는 알겠는데 잘 되지 않는다. 때로는 언젠가의 기억에 짓눌려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니 요즘은 그렇게 과거에 매몰되는 일은 많이 줄어든 것 같긴 하다. 예전보다 심리 상태가 많이 나아지긴 했다는 뜻이겠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로부터 전보다 표정이 좋아 보인다거나 긴장감이 줄어든 것 같다는 등의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했다. 심리적 부채감이고 뭐고 털어낼 건 털어내고 살아야지 싶다가도, 그걸 어떻게 하는 건데. 이 또한 전반적인 심리 상태처럼 시간의 흐름과 지원 사업의 도움 속에서 차차 개선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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