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일 일요일 을사년 무인월 경오일 음력 2월 3일
오해, 갈등, 그리고 집단에서의 배제. 완전히 잊고 살았지만 그렇게 낯선 키워드는 아니었다. 무의식 너머 저 어딘가에 묻어두고 꺼내려하지 않던 언젠가의 이야기와 닿아 있었다. 잊고 사는 게 마음이 편했는데, 어느샌가 그것을 어느 정도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려도 불안감이 몰려오지 않는 정신 상태가 되었다. 이게 내 정신 상태를 파악하는 지표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애초에 그것을 다시 끄집어낼 생각도 하지 않았더랬지.
결코 낯설지 않은 그런 키워드를 가진 청년을 얼마 전에 만났다. 만나려고 만난 건 아니었지만, 청년기지개센터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갔더니 그곳에 있었다. 청년이음센터 출신 청년들 중 그 청년이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나까지 두 명뿐이라, 그렇게 셋이서 한 번 보자는 이야기를 작년부터 몇 개월씩 말만 하고 있다. 하여간 모두가 그를 떠날 때 연락을 끊지 않은 건 주변 그 누구도 나에게 그에 대한 소문을 언급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어쩌면 11년 전의 나를 겹쳐 본 것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소문에 대한 건 아직 잘 모른다는 건 여담. 아무도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실체가 있는 소문인가 싶을 정도로. 당사자는 궁금하다면 어떤 이야기가 퍼졌었는지 말해줄 수 있다고 하지만, 굳이 안 좋은 기억을 들쑤시면서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
물론 어린 날의 나와는 많이 다른 상황이기는 하다. 이삼십 년 살아온 나의 인생에 가장 심한 욕설과 비난을 받았던 시절, 그래도 나는 그 상대가 좋았고 그 집단이 좋았다. 그가 나를 혐오할지라도 나는 그를 사랑했다. 내가 사랑한 그 집단은 와해된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좋아하는 대상은 좋아하지 않게 될 수 있어도 사랑하는 대상은 그러지 못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욕하고 내리깔며 비난함으로써 그의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악이 되기를 선택했다. 그들과 함께 행복할 수는 없지만 내가 배제되는 편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그들에게 더 나은 상태라면, 난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 때 모종의 이유로 그 집단이 와해되었다고 전해 들어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렸지만.
'친구'의 기준이 높아진 것도 그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해내지 못한 나와의 친구라는 관계를 다른 누가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친구 비스꾸레한 무언가' 정도로 취급하는 이들은 종종 있어도 '친구'라고 취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외적으로는 '친구 비스꾸레한 무언가' 정도인 사람도 '친구'라고 언급하곤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조금 친한 지인'일 뿐이다. 남쪽 동네 녀석들도 반 이상은 '친구 비스꾸레한 무언가'에 해당하고, '친구'는 다섯 명뿐인 것 같다. 한 명은 연락이 끊긴 지 8년쯤 되었고 더 이상 연락할 수단도 갖고 있지 않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친구'라고 남아있다. 아는 거라고는 93년 가을에 태어났다는 것과 이름 정도뿐이지만. 굳이 막 찾아낼 생각은 없다. 언젠가의 기억으로, 언젠가의 친구로 간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