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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감각 2

2025년 3월 5일 수요일 을사년 무인월 계유일 음력 2월 6일

by 단휘

학생 때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러 가면, 차라리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한 번은 영화관과 놀이공원 중 하나를 선택해서 원하는 쪽으로 갈 수 있던 해가 있었는데 (아마 복수담임제로 하면서 두 담임이 각각 인솔할 수 있어서 선택지가 존재했던 것 같다) 놀이기구를 못 타는 데다가 아무래도 영화관을 가는 편이 일찍 끝날 것 같아서 영화관을 선택했다. 그때 상영했던 게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중 하나였는데, 상영 시간 내내 자다 와서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시청각 자극이 과하니까 쉽게 피로해져서 잠이 잘 오더라.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처음 다녀오고 나서도 내가 그런 걸 즐길 수 없는 녀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크리스말로윈 콘서트는 꽤나 기대하던 것이었고 또 그만큼의 무언가이긴 했지만 나는 콘서트장에 온전히 스며들지 못했다. 다른 매니아 분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느끼고 있지만 왜 나는 저들과 함께 즐기지 못하나. 어쩌면 이 또한 시청각 자극에서 오는 이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들었다. 뮤지컬도 조명 효과를 많이 쓰는 작품은 좀 힘들더라. 언젠가 해외 수출까지 되었다는 작품을 보고 왠지 모를 불쾌함을 느끼며 스트레스 반응이 올라온 적 있었는데, 함께 갔던 일행의 말에 의하면 베이스 음질이 안 좋았다고. 내 의식의 영역에서는 인지되지 않는 수준의 불편함에도 나의 무의식은 반응하고 있더라.


미각과 후각은 그만큼 예민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사람들이 맛없다고 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그렇게 맛이 없는지 모르겠고, 엄청난 맛집이라고 알려져 있고 일행들도 거기에 동의하는 음식에 대해서도 다른 음식에 비해 특별히 맛있는 건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음식에 대해서 중간 점수를 주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는 몇 가지 음식도 굳이 무언가를 고르자면 상대적으로 좋아한다는 거지 특별히 엄청나게 좋아하는 건 아니다. 안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는 대체로 먹으려면 먹긴 하지만 먹을 만한 음식이 그렇게 많은데 굳이 극소수의 별로인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싶을 뿐이다. 그렇다 보니 뭘 먹어도 그럭저럭 잘 먹지만 좋아하는 음식으로 메뉴 선정을 하는 건 쉽지 않다. 밥과 반찬으로 이루어진 식사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뭘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급식이 차라리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상한 음식을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점은 삶에 있어서 좀 치명적인 부분이다. 곰팡이 같은 눈에 띄는 무언가가 있다면 못 먹는 음식이라는 걸 알지만, 맛과 냄새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언젠가는 맛이 살짝 가서 버리려고 꺼내놓았다는 음식을 모르고 주워 먹은 적도 있다. 다행히 그 정도로는 탈이 나지 않는 신체를 가졌지만, 언제 어디서 못 먹을 음식을 먹고 탈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자취를 하게 될 경우 상한 음식을 구분할 수 있는 동거인이 필수일 것 같다. 아니면 상할 새도 없이 음식은 바로바로 먹어 치운다거나.


후각 자극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냄새에 꽂히면 그 냄새에 집착하곤 한다. 2024년이 시작되는 겨울에 마지막으로 맡았던, 이제는 어떤 느낌의 냄새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향에 대해서도 여전히 찾고 싶어 한다. 그때도 상당히 오랜만에 맡은 냄새였는데 그것이 느껴지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그 향이라는 걸 바로 알았다. 향을 묘사하는 표현들을 잘 알지 못해 어떤 향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언젠가 다시 마주한다면 그 향이 그 향이라는 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올리브영이나 이마트의 향수 및 방향제 코너에서는 찾지 못했다. 뭐, 찾게 된다면 그 향을 묻혀 놓은 것에 코를 박고 있는 심히 변태 같은 모습을 연출하게 될 것만 같으니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위해서는 못 찾는 게 나을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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