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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리더

2025년 3월 12일 수요일 을사년 기묘월 경진일 음력 2월 13일

by 단휘

어디 가서 리더 역할을 해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나는 리더일 때 역량을 잘 발휘하지 못한다. 리더보다는 그 옆에서 약간의 권력을 행사하는 서포터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팀장보다는 부팀장이 적성에 맞는다고 해야 하나. 누군가 전체를 보며 나아갈 때 부분을 보며 보조하는 역할이다. 못 하는 걸 억지로 하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각자의 역량에 맞게 최선의 포지션을 찾는 게 더 낫다고 보기에 나는 늘 리더보다는 서포터를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리더로서 존재했던 흔치 않은 팀이 학부생 때의 졸업작품 팀 프로젝트였다. 2학년 2학기 때 만난 녀석들과 3, 4학년 동안 함께 팀 프로젝트를 했는데, 돌아가며 팀장 역할을 하다가 결국엔 내 차례가 된 것이다. 역할을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늘 주장하던 "역량에 따른 분배"를 주장했다. 작업을 정확히 N분의 1 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획 역량이 떨어지지만 시스템 소프트웨어 쪽 지식이 있는 녀석은 학기 초 기획 단계에서는 본인 역량에 따라 역할이 작게 주어지고, 본격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시기에 역할을 늘린다. 내가 시스템 아키텍트나 SQA의 역할을 도맡아서 했던 건 그 방면으로 내 역량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하는 작업양이 적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단기적인 팀이라기보다는 매 학기 이어지는 팀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이번 학기에 바빠서 힘들면 역할을 좀 줄이고 다음 학기에 여유가 되면 더 기여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내가 리더로 있던 것은 막학기라 '다음 학기' 따윈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관심 있는 사업에 대해 내가 정보를 물어 와서 권유했기 때문에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면 내가 리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추세로는 인원 미달로 지원조차 못 할 것 같지만 말이다. 동부권 기지개 청년들 중 관심 있는 사람들 모이면 최소 인원인 6명은 채워질 것 같다가도, 뚜렷하게 관심을 표한 사람이 딱 한 명 밖에 없다. 관심은 있는 듯하지만 애매하게 표현한 사람이 두 명 있고, 본인 의사는 밝히지 않고 '이 분 불러요' 하며 서울 서쪽 끝자락에 사는 사람을 언급하는 사람도 한 명 있고. "광진구 오는 데 부담 없는 사람만"이라는 조건을 적어놨는데 굳이 서쪽 끝자락에 있는, 그렇다고 시간이 남아돌아서 멀리 이동하는 데 부담 없는 것도 아닌 사람을 언급하는 건 무슨 심리인가 싶기도 하고. 그 사람 나름의 농담의 영역인 것 같긴 한데 말이다.


하여간 이 불확실한 사업의 리더로 활동한다는 건... 어떨까. 기지개 권역 센터라도 교류가 잘 되었다면 물어볼 만한 사람이 조금 더 늘었을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파티원 모집이라는 가장 어려운 난관에 부딪혔다. 이걸 이겨내고 나면 또 계획서 작성이라는 녀석과 일정 조율이라는 어마무시한 녀석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말이다. 접수까지 일주일 남았는데 사람 모으고 계획서 작성하고 개인정보 동의서에 그 모든 파티원의 서명을 받아서 메일로 제출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어제 올린 "연락 주세요"에 대한 연락이 충분하지 않으면 더 추가로 물어보지 말고 깔끔하게 보내줘야 할 것 같다. 12시간 동안 한 명 응답했으니 나머지 12시간 동안 최소 네 명은 응답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결국 큰맘 먹고 도전해 보려고 한 리더 경험은 이대로 없던 일로 하게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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