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5일 화요일 을사년 기묘월 계사일 음력 2월 26일
내 가방에 책을 위한 자리는 없다. 태블릿에 다이어리에 이것저것 챙기고 나면 그럴 만한 여유 공간이 없다. 파우치에 들어있는 것들 중 대부분은 꺼내지도 않는 녀석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갖고 다닌다. 그렇게 괜히 갖고 다니는 것들과 진짜 필요한 것들의 조화로 인해 책이 들어올 여유 공간 따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잡동사니들을 치우고 나면 공간이 생기겠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길에는 책을 읽곤 한다. 넣어둘 곳은 없지만 그저 들고 있을 뿐이다. 지하철에서는 책을 읽고 도착하면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되니 사실 가방에 꼭 책을 위한 자리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보로 이동하는 구간에서는 그저 짐이 되기도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거슬릴 정도로 무게나 부피가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막말로 사람들이 흔히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다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비해 유의미하게 더 걸리적거리진 않는다.
겨울에는 종종 그렇게 들고 다니다가 패딩 주머니에 책은 집어넣곤 한다. 주머니에 들어가는 정도의 사이즈가 좋다. 책이 너무 작으면 가독성이 떨어지고 너무 크면 휴대성이 떨어지는데, 유유 출판사의 책이 딱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 편한 크기인 것 같다. 사륙판이라고 하던가. 이 크기가 마음에 들어 언젠가 내가 내 출판사를 운영한다면 특별히 다른 크기로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경우에는 이 크기로 통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는 건 여담.
하여간 책이라는 것들은 늘 그렇게 한 권씩 나의 손에 들려 함께 거닐다가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 헤어지곤 한다. 10대 시절에는 책 읽기를 거부해 오다가 20대가 되어서야 책을 읽기 시작한 늦깎이 독자지만 언뜻 보기엔 늘 책과 함께였던 녀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명조체와 고딕체 중 어느 것이 읽기 편한가 라는 사소한 물음에 실태가 드러났지만 말이다. 종이책에 익숙한 사람들은 명조체를 더 읽기 편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고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사람들은 고딕체를 더 읽기 편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는 책을 들고 다니는 녀석치고는 고딕체를 선호하는 편이다. 요즘 아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서 고딕체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얼결에 '요즘 아이' 취급을 받아 요즘 학생들 학교에서 태블릿 많이 쓰죠, 하는 질문을 받기도 하였는데, 졸업한 지 너무 오래 되어서 요즘 학생들 잘 모르겠다. 이론상 내가 졸업한 해에 입학한 대학생이 이미 졸업했을 수 있는 시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