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4일 금요일 을사년 기묘월 계묘일 음력 3월 7일
'기브 앤 테이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준 만큼 받아야 하고 받은 만큼 준다나. 나랑은 안 맞는 가치관이지만 그럴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손해 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큰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더라. 나야 내가 '기브'한 것에 대해서 마음에 담아두고 살지 않으니 그 정도 가치의 '테이크'를 기다리지 않는다. 애초에 내가 그만큼의 무언가를 '기브'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살다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거나 내가 '기브'한 무언가를 마주쳤을 때 비로소 "그러고 보니 내가 이 녀석에게 이런 걸 줬었지" 하고 인지할 뿐이다.
난 '기브'와 '테이크'를 연결 짓지 않는다. '테이크'하면 내가 '기브'했던 것은 기억 못 하고 그저 받은 거에 좋아하는 단순한 녀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애초에 '기브'하고 싶으니까 '기브'하는 거지, '테이크'했기 때문에 '기브'하는 건 아니지 않나. '기브 앤 테이크'라기보다는 '상호 기브의 연속'이 내 가치관에 더 맞는 것 같다. 어떤 관계에서는 내가 준 게 더 많고 어떤 관계에서는 내가 받은 게 더 많겠지만, 그런 걸 일일이 계산하고 따지지 않는다. 그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녀석이기도 하고 말이다.
언젠가의 기억 속의 옛 지인은 기브 앤 테이크 운운하며 나를 비난했다. 그 사람의 집에 놀러 가기로 한 당일 아침에 영문도 모른 채 손절당했고, 결국 난 그의 집에 가져가려고 했던 에코백의 짐을 풀 수밖에 없었다. 즉각적인 '테이크'가 없으면 자신이 했던 '기브'에 대해 무의미함을 느끼는 걸 넘어서 상대방과의 관계 자체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아마 그 이후로 누군가의 '기브'에 대해 약간은 경계하게 된 것 같다. 충분히 가까워지지 않은 사람이 "이거 하나 드실래요?" 하면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더라도 일단 거절하고 본다.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긴 다음에야 받기 시작한다.
살아가다 문득 지난날의 흔적을 발견할 때면 언젠가 잊어버린 순간들의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그는 왜 그랬을까.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이렇게 흘러온 게 최선이었을까. 이제 와서 돌이켜 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고, 답을 찾는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는데 말이다. '기브 앤 테이크'를 주장하였으나 본인이 '테이크'하기 직전에 날 떨쳐낸 언젠가의 누군가가 나에게 '기브'했던 물건을 사용하다가 문득 그를 떠올려 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