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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꽃

2025년 4월 1일 화요일 을사년 기묘월 경자일 음력 3월 4일

by 단휘

슬슬 꽃이 만개하는 시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사실 그런 걸 즐겨 본 기억은 없지만 말이다. 애초에 꽃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흥이 없다. 가장 쓸데없는 선물 중 하나가 꽃다발이라고 생각한다. 대외적으로는 "받을 땐 좋은데 이후에 좀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라고 주장하지만 받을 때도 그다지 좋진 않다. 종이뭉치나 잡초더미를 받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 보통 사람들은 이 꽃에서 무엇을 느끼는 걸까 싶기도 하고. 예쁜가? 향기로움? 어쩌면 단지 꽃에 대한 조건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뿐일까.


별 감흥이 없다 보니 꽃구경 같은 건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학생 때 사람들 무리에 끼고 싶어서 동아리 사람들 봄소풍 간다는 데 따라갔던 게 전부였을 것이다. 그들 무리에 끼고 싶은 거였지 소속감을 느끼고 있던 것은 아니라서 편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간 건 아니긴 했다. 어쩌면 편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간다면 좀 더 긍정적인 결괏값이 나올 수 있을까. 그래서 살짝 이야기를 꺼내 보다가도, 아무래도 그런 걸 추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란 말이지.


꽃은 피크민 머리 위에 있는 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소리나 하고 있다. 난 꽤나 자연친화적인 것으로부터 거리가 멀구나 싶기도 하고. 아주 어릴 때 마당이 딸린 2층집에 살면서 풀과 벌레에 대한 거부감은 많지 않은 편이었는데, 부정적이지 않다 뿐이지 꽃과 나무에 대한 긍정적인 무언가로 남진 않았다. 학생 때 공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것도 그저 공간적 배경이 그곳이었을 뿐, 특별한 무언가로 남진 않았고 말이다. 자작나무, 참나무, 미르나무 등의 IgE 양성 수치가 Class 3가 나오는 등 식물성 알레르기에 대한 양성 결과가 많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그것들이 긍정적으로 남진 못한 데 한몫했을까. 107가지 검사 항목 중 동물성 알레르기 항원에는 아무것도 반응하지 않아 놓고 Class 3의 11가지, Class 2의 9가지, Class 1의 5가지가 모두 식물성이란 말이지. 뭐, 이런 항체 검사는 어디까지나 알레르기가 있을 "가능성"일 뿐, 실제로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말이다. 주로 안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한 핑곗거리로 쓰기도 한다. 가장 높게 나온 게 옥수수고 그다음이 감귤류인 걸 들먹이면서 말이다.

꽃구경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표한 사람은 두어 명 정도 있던 것 같은데 추진될지 흐지부지될지 그건 잘 모르겠다. 살다 보면 워낙 말만 나오다가 잊혀 사라져 가는 일정들도 많아서 말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싶은 일정에 대해서는 다이어리 구석에다가 적어놓기도 한다. "자양팟 일정 미정" 같은 것 말이다. 직접 마주하는 일이 줄어들면 따로 연락을 하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으니 자연스레 말을 덜 하게 된다. 그래도 소셜 미디어에 이것저것 흔적을 남기는 편인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대화거리가 제공되는 느낌이라 그 흔적에 대한 반응을 빌미로 말을 걸기도 한다. 최근에도 그 "자양팟"의 멤버가 올린 스토리에 반응하다가 언제 만날지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꽃구경은 이번 주 토요일이 가장 무난해 보이긴 하는데, 어떻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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