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2일 토요일 을사년 경진월 신해일 음력 3월 15일
당일 약속에 대한 거부감은 별로 없는 편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라도 연락을 받았을 때 혹하면 방향을 튼다. 당일 취소에 대해서도 뭐야 하면서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약속 장소로 이미 이동했다거나 그 일정을 위해 조정한 게 있다면 불쾌하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약속 한 시간 전에 취소되어도 문제시하지 않는다. 원래 성향 자체가 그런 건지, 아니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가 직전에야 일정을 알 수 있는 환경에 오래 노출되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당일 취소에 대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건 챈 님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고. (어제는 저녁 먹었냐고 물어봐 놓고 안 먹었다고 하니까 생각해 보니 일행과 먹기로 한 게 내가 안 먹는 메뉴인 것 같다고 다음에 보자고 하더라)
때로는 계획되어 있는 일정이 더 힘들다. 대략적인 일정만 잡혀 있는 거라면 괜찮지만 구체화되어 있을수록 일정을 며칠 앞두고 몇 날 며칠 의식이 그쪽으로 가 있는 경향이 있다. 멀리 이동하는 경우라면 아무리 일정이 안 정해져 있어도 이동하는 교통편에 대한 일정부터가 날 신경 쓰이게 만든다. 특별히 고민할 것도 없이 승차권 예매되어 있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가서 타면 되는 상황인데 말이다. 뭐가 그렇게 문제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나의 무의식이 느끼는 불편함이 무엇인지는 나조차 파악하지 못한 게 너무 많다. 그래도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해소되는 문제니까 출발하는 날까지 며칠만 잘 버티면 된다.
며칠 집을 비울 경우에도 복잡해진다. 기존에 하려고 했던 것들은 어떻게 분산시켜야 할지,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미룰 것인지,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진다. 당일 약속이 잡히는 경우에는 보통 그 시간에 원래 하려던 것을 다음날로 미루는 게 문제가 되지 않는 정도의 만남이지만 멀리 이동하여 며칠을 보낼 경우에는 말이 다르니 말이다. 지금 이걸 하는 게 맞아? 미리 처리해두어야 할 게 더 있나? 그런 생각들이 의식의 영역으로 침범한다. 보통은 멀리 이동하는 것과 며칠 집을 비우는 게 함께 이루어지기에 교통편에 대한 것부터 일정 조정에 대한 것까지 모든 게 나를 자극한다.
여행을 안 좋아하는 것도 그런 맥락인 것 같다. 막상 가면 잘 즐길 것 같다가도 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다. 누굴 만난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런 건 다 좋은데 만나기 전까지가 너무 힘드니... 약속을 잡으면서도 내 목소리가 안 좋은 게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