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4일 월요일 을사년 경진월 계축일 음력 3월 17일
어제는 귀갓길 2호선 내선순환선에서 옛 지인을 만났다. 홍대입구역에서 2호선을 타고 별생각 없이 한 칸 이동했는데, 그 칸에 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도 내가 왜 그쪽으로 이동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것은 그냥 무의식적인 행동이었고, 내려서 보니 내가 가야 할 환승 통로와는 반대 방향으로 한 칸 이동한 거였더라. 하여간 누군가 나를 보고 반응하며 주섬주섬 물건을 정리하고 일어나길래 뭐지 했는데 "단휘 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이 사람이 누군지 떠올랐다. "아 멋진 신세계...!" 지난여름 SF연극제에서 함께 공연을 했던 민정 님이었다.
극단 활동을 그만둔 이후로는 극단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 분들하고도 일절 교류를 하지 않고 지냈는데 이렇게 우연히 스쳐 지나가듯 마주치니 신기하기도 하고 꽤나 미묘한 기분이었다. 나는 더 이상 발을 들이지 않은 채 살고 있는 분야의 사람과의 재회. 근황 이야기도 하고 공연 이야기도 하고. 듣자 하니 나보다 몇 주 먼저 극단을 그만두었던 91년생 행님하고는 대학로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다고 하더라. 그래 나도 누군가를 마주친다면 대학로일 거라고 생각했지 지하철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행님하고는 답십리 쪽 사실 때까지는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어디론가 이사 가고 나서는 그다지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친밀도에 의한 사담이라기보다는 그저 퇴근길메이트로 지내다 보니 이것저것 얘기하게 되었던 느낌.
하여간 새삼, 누군가 나를 보고 반응한 것 같다는 주변의 움직임은 인지가 되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구나. 왜 나의 무의식은 상대가 나를 의식했음을 인지했을 때 그에 대한 쿼리를 돌리는 게 아니라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 그에 대한 쿼리를 돌리는가. 이 사람 말고도 인사하기 직전까지는 누구지 하다가 인사를 듣고 나서야 상대가 누군지 알아본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끔은 자기를 못 알아봤냐면서 서운한 티를 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데서 이렇게 마주칠 줄 상상도 못 해서 순간 못 알아봤다고 대답하곤 한다. 인사를 하고 나서도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 전까지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순간적으로 못 알아봤을 뿐인 게 맞긴 하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투성이구나 싶더라. 어느 기자 출신의 게임 디렉터는 게임이 흥행하고 게임 음악이 게이머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호평받으며 게임 음악 콘서트도 하게 되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무대에 섰던 사람들이 각자의 길로 흩어진 것에 대해 생각을 하며. 그리고 이렇게 우연히 누군가를 다시 마주치며. 생각해 보면 공연 준비를 하며 나눈 사담보다 지하철 몇 정거장 가면서 나눈 사담이 더 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언제 어디서 어떤 인연이 이어질지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