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4일 화요일 갑진년 계유월 신묘일 음력 8월 22일
초등학생 때 숙제로 일기를 써오라고 하면 가끔은 무슨 내용을 쓰지 하다가 '일기' 그 자체에 대한 일기를 써 오는 녀석이 있었다. 주로 일기를 왜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거나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쓰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쓰느라 힘들다는 등의 투정이었다. 그런 투정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아침에 써내려 가는 이 글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해볼까 한다. 아침에 일어나 첫 한 시간을 나와 함께 하는 녀석 말이다.
오전 다섯 시 반에서 여섯 시 사이에 일어난다. 가끔 밍기적거리다보면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주로 그렇다.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는 사유의 시간으로 빼놓았다.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고 그 흔적을 남기는 것. 시간이 너무 짧으면 마음이 급해질 것이 분명하기에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짧은 글이지만 한 시간이나 잡아 놨다. 글을 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조용한 아침에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게 목적이니까. 글은 그 결과물일 뿐이다. 언젠가 주객전도 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글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것에 대한 경계는 내 친구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내가 이 말을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 시간을 너무 길게 잡는다면 하염없이 매몰되어 현실 밖에서 살아가게 될 것 같으니 한 시간 정도면 그럭저럭 적당한 것 같다.
그렇다면 그 한 시간 동안 무엇에 대해 생각하고 무엇에 대해 끄적이는가. 일단 자리에 앉았을 때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걸 우선시한다. 무언가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그걸 뒤로 미룬 채 다른 주제를 꺼내들 이유는 없다. 당장 떠오르는 게 없다면 '언젠가 여유가 될 때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며 키워드 위주로 적어 놓은 목록을 확인한다. 오늘 기준으로 그곳에는 스무 개의 항목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글제'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어제 오후에 적어놓은 스무 번째 항목이었다. 일상 속에서 무언가 떠올랐는데 깊이 있게 다룰 여유가 없을 때 그곳에 항목을 추가하곤 한다. 아니면 다른 어딘가에 다른 형태로 기록해 놓은 언젠가의 흔적 속에서 '이 이야기는 현재의 관점에서 다시 정리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싶은 이야기를 끌고 와서 넣어 두기도 한다.
어떤 주제는 내 목록에 넣어두기는 했는데 쓰기 애매해지기도 한다.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그 내용을 살짝 언급하고 넘어갔을 경우, 그걸 글 한 편 분량으로 구체화해서 이야기를 할 정도의 무언가가 될지 아니면 그 짧은 언급 속에 하고 싶은 말이 충분히 압축되어 들어갔는지 잘 모르겠기도 하고. 어떤 주제는 시의성에 의해 적절한 주제인지 고민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주제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괜히 주저하게 되는 것도 있다. 그 오해를 푸는 말로 글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구구절절해지는 느낌이고. 내가 현재의 입장에서 이런 소리를 해도 되나, 싶어서 언젠가의 미래로 미뤄두기도 한다.
분명 나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나의 현재 입장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며 스스로 필터링을 가한다. 사실 애초에 지난 기사월 말부터 나 자신에게 충분히 솔직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글로 남기진 않지만 종종 생각하곤 한다. "언젠가는 답을 찾을 수 있겠죠" 어디까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어디까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어 있는 자리에서 늘어놓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