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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Sep 23. 2024

#21 무의식

2024년 9월 23일 월요일 갑진년 계유월 경인일 음력 8월 21일

이게 맞지, 이게 맞는 거지. 그렇게 되뇌면서도 지나간 일을 반추한다. 의식하지 않고 지냈던 순간들에 나의 무의식이 저질렀던 일들도 생각해 본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때마다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게 언제더라? 단편적인 기억만이 남아 있다. 어느 식당. 한 여서일곱 명 정도의 사람들. 내 왼편에는 미정이 앉아 있고―.


어쩌면, 조금 다른 운명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아니, 이게 최선이다." 난 그렇게 주장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최선이다. 나에게도, 그리고 너에게도. 아니, 어쩌면 '나에게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너에게도'라고 합리화하는 것일지도.


하여간 무의식이 저지른 일들을 돌이켜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만큼 나 자신이 현실을 살아갈 때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구나 싶기도 하고. 식욕은 그리 강하지 않은 반면 왠지 음식에 대한 물욕은 꽤나 있는 편이라 아무한테나 먹을 거 잘 안 주는데 그런 내가 아무렇지 않게 내 간식을 나눔 하게 되기까지... 이게 참 미묘한 지점이다. 분명 잘 안 주는데 왜 이 친구에게는 '친구, 는 아니고 그 비스꾸레한 무언가'로 취급하던 시기에 이미 두 번이나 내 간식을 넘겨준 거지? 이름부터가 흥미로운 친구긴 했다. 본관이 전주면 나 충격받을 거야. 만약 그럴 경우, 다른 친구가 떨칠 진振 자를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상으로 엄청난 일이거든. 현재 내 마음에 각인된 최고의 이름과 닿아 있다는 것은 그 정도의 의미다. 역시 이름이란, 언젠가의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에게 이름이란 상당한 영향을 주는 속성이다.


그 정도의 영향력이라면, 저런 이름이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으면 뭐가 달랐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려다가 또 그만둔다. 그게 얼마나 의미 없는 생각인지 알고 있으니까. 어느 기사월 말에 이미 정해져 있던 이야기. 그게 누구일지는 몰라도 다음에 올 누군가를 위한 자리는 없다는 것은 그때 이미 확실해져 있었다. 단지 그 말을 어떤 식으로 전해야 할지 적절한 어휘와 표현을 찾는 데 실패했을 뿐. 뭐, 이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건 웅치 님과, 같이 있는 김에 같이 얘길 듣게 된 챈 님뿐이겠구나. 지난여름, 여름... 아니다. 그래도 역시, 지난여름을 겪었기 때문에 이렇게나마 거절할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른 가능세계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어느 가능세계의 긍정적인 방향에서는, 결국엔 내가 상처 줄 것 같아서. 하지만 역시 그런 식으로 상처 주고 싶지는 않아서, 상처 주기에는 너무 소중한 존재로 남아서, 여기서 끊어내는 게 최선...이긴 할 거다. 분명 그럴 거다.


넌 정말 특별한 애야 늘 생각했어 완벽한 세상이라면 사랑했겠지

근데 그럴 수가 없어 그게 안 돼 믿어줘 너 때문이 아냐


왠지 내 안에 흐르는 노래를 중얼거리며... 가만, '나의 무의식의 미정에 대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흘러 온 거지? 이 또한 나의 무의식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겠지(?). 역시 내 안에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미정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내키면 다시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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