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인 선택에서 비롯된 나의 아침 시간은 매일 아침을 여는 첫 번째 루틴으로 자리 잡혔다. 어느 월요일 밤, 자려고 누운 채 생각했던 이야기. 거창한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갇혀 밤을 보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글을 연재하기로 하고 나서 주제를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다. 나의 사랑에 대한 사유가 먼저였고, 그것을 글로 정리하고자 하는 게 그다음이었으며,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에 『#1 사랑』이라는 주제로 첫 번째 글을 써내려 갔다. 그렇게 사흘이 지난 뒤 그동안 쌓인 글을 첨부하여 작가 신청을 하였는데 바로 선정이 되어 이렇게 글을 이어 나가고 있다.
첫 번째 글을 써내려 가며, 모든 이름은 익명 처리로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려운 완전한 익명보다는, 다시 언급되었을 때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별칭이 좋을 것 같았다. 그중 일부는 오래전부터 사용하여 당사자도 알고 있는 별칭이고 일부는 당사자는 봐도 긴가민가할 별칭이지만, 완전한 익명처리를 위해 당사자가 물어봐도 본인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별칭이 아닌 상대의 공식적인 닉네임을 사용할 경우에는 존칭을 포함하기로 한 건 그것보다 며칠이 더 지난 일이었고.
내 삶에 스며든 단 하나의 사랑. 첫 번째 글을 마치며 그런 말을 했었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지난여름에 있던 일이고, 아직도 가끔 반추하게 되는 시간이다. "단 하루를 사랑했어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 있습니다..." 최진영 2집 『영원Ⅱ』에 쓰여 있던 문구가 생각난다. 그는 내 삶에 완전히 예외적인 존재였다. 언젠가 이상형 토크를 나눴던 챈 님이나 웅치 님이 본다면 '말이 다르잖아요' 하고 반응할 것 같은 예외성을 가진 외형의 존재. 하지만 난 고작 두 번째 만남에 그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었나 보다.
사실은 아직 헤어지지 않은 애인이 있다. 언제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시 가까워질 거라고 믿고 있으며, 나는 헤어지는 법을 알지 못해 관성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그저 그런 사이. 끝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 이상 안 볼 사이라면 차라리 낫겠지만, 애인이라기보다는 친구로 지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이런 관계에서는 친구로 남는 것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완전히 쳐내지 못한다. "친구인 채였다면 오히려 즐거웠을 것만 같아" 그렇게 또 한 곡 스쳐 지나간다.
최근에 지역 커뮤니티에서 등산을 갔다며 보내준 뒷모습 사진을 받았을 때, 확실히 내 외모 취향은 이쪽이 맞긴 하다는 것을 느꼈다. 반올림해서 170cm 정도가 되는 키. (이 녀석은 168cm다.) 뚠실한 체형. (그 키에 100kg가 넘는다.) 약간은 긴 반곱슬 머리. (내가 좋아하는 세미롱 길이까지는 아니긴 하지만 취준 한다고 자른 상태에서 많이 기르긴 했다.) 그렇다고 외모만 보고 사귄 건 아니었지만 꽤나 좋아하긴 했는데.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그저 '좋아함'의 영역이었던 것 같다. 뭐, 그 정도 감정으로 이어가는 관계도 나쁘진 않았지만.
나는 본질을 파악하는 그의 통찰력이 좋았다. 거기에 특유의 말빨이 더해져 《룬의 아이들》의 막시민 리프크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내가 좋아하는 외형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흥미로운 존재에 대한 가벼운 호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소한 관심에서 시작된 그럭저럭 괜찮은 시간. 그것은 어느 순간 나의 일상이 되어 있었고 그대로 좋았다. 가볍게 시작한 것 치고는 꽤나 멀리 왔지만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때로는 나로 하여금 어떤 무지를 느끼게 해 어떤 수준 차이라고 해야 할지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아무렴 어때. 그런 관성적인 흐름에 커다란 타격을 주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전까지는 그러지 않아도 될 대화가 논쟁처럼 이어져서 나의 의견이 어찌 되었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듯한 상황이 몇 번이고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지만, 생각해 보면 좀 힘들었던 것 같다. 애초에 연애 중임에도 고립감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사단법인 씨즈와 청년이음센터의 도움을 받고 있던 것만 봐도 뭔가... 뭔가다.
이 이야기의 끝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하지만 난 결코 심각한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눈물도, 맹세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이대로 타올랐다가 그대로 팍 꺼져버렸으면." 내가 내 행복에 반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건 안다. 둘 중 하나라도 깔끔하게 끊어내는 편이 나았겠지. 어느 기사월 말에 내 삶에 스며든 단 하나의 사랑. 그리고 어느 경오월 초, 나는 그에게 주장했다. "각자가 어떤 상황, 어떤 관계에 놓여 있든 개인의 감정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어찌 되었건 너를 사랑하리라." 먼 훗 날, 나의 현재가 내 삶에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