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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Sep 26. 2024

#24 방향성

2024년 9월 26일 목요일 갑진년 계유월 계사일 음력 8월 24일

언젠가 사단법인 씨즈의 두두학당에서 성악 발성 수업을 들은 적 있다. 매주 한 번씩 저녁에 모여 성악가 선생님으로부터 수업을 듣는 몇 주짜리 과정이었다. 수강생은 나까지 대여섯 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거창하게 음악을 어떻게 해보고자 하는 건 아니고, 음악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신청했다.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난 음악을 잘 듣지 못했고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마저 나에게 불안과 스트레스를 야기하곤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굴」 같은, 음악의 흐름에 맞춰야 하는 류의 작품을 연기할 때 특히 더 어려워했다.) 누군가는 음악 그 자체가 좋아서, 누군가는 음악으로나마 자신을 표출하고 싶어서, 누군가는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 각자의 이유로 수업을 들으러 갔다.


각자의 동기가 다른 만큼이나 각자의 상태와 나아갈 길이 달랐다.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같은 것을 이 사람과 저 사람에게 완전히 반대로 설명하기도 했다. 가령 누군가에게 밀듯이 발성하라고 했던 부분에서 나에게는 당기듯이 발성하라고 한다거나. 각자가 가진 현재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가야 할 방향성도 다른 것이다. 이것은 소규모 강습에서만 누릴 수 있는 큰 이점이다. 전체적인 것만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거나 한두 명만 예시로 봐주는 게 아닌, 모두를 하나하나 각자에 맞게 도와주는 것.


최근에 문득, 친구들과 헤어지고 혼자 집에 가는 길에 그 수업이 생각났다. 재작년에는 두더지땅굴에도 글을 올리고, 말랑말랑모임터에도 방문하고, 이것저것 그랬더랬지. 그러다가 작년에는 사회로의 복귀보다는 관계 회복이 더 필요한 것 같아 청년이음센터로 갔고... 여담이지만 일상 회복은 혼자 어느 정도 되는 편이고 사회로의 복귀는 이번 일경험처럼 내몰리면(?) 나 스스로가 저질러 버리는데, 관계 회복은 스스로 해내는 데 어려움이 커서 역시 난 센터 다니는 동안은 동행팀일 것 같다. 뭐... 여기도 졸업하긴 해야지. 센터 다니는 기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내 친구들은 내 친구들로 남아 있을 테니, 분명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여간 살짝 딴 길로 샜는데, 그거다. 발성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거의 모든 분야가 각자의 상태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질 것이다. 이 친구에게 하는 말이 저 친구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심지어는 그 반대로 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다른 것보다 글의 타겟팅 측면에서 그런 완전히 반대되는 느낌을 받았다. 한 친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두루뭉술한 무언가를 써서 난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은 느낌이 드는 글'이라고 평가했다. 일개 공대생이 누군가의 글을 평가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히 주제넘게 그렇게 주장했다. 그 친구는 글의 타겟을 조금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세상에. 출간 기획이나 마케팅에서는 타겟 세분화를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번에 새삼 인지했다. 이런 느낌이구나. 그런 중요한 깨달음을 준 나의 친구에게 감사...?


뭐, 그 친구는 그렇고. 다른 친구의 경우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기보다는 조금 더 대상이 없는 글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비슷한 상황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거나 하는 건 이해한다. 다만... 그 중심을 잘 잡지 못한다면 독자를 지나치게 의식하게 될 위험이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지 신경 쓰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형태로 담아내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글을 처음 발행했을 때와 비교해 보자. 대부분의 변화는 내면의 긍정적인 변화에서 온 거라 사실 크게 문제 되지 않고 오히려 좋은 변화인데, 그렇지 못한 변화가 하나, 그건 것 같다. 처음에는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쓰기 시작한 글이었지만 이제는 독자를 너무 의식하게 되었다. 어디까지나 집까지 걸어가며 혼자 생각했던 부분이라 본인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역시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보다 걷고 있을 때 생각이 더 잘 되는 것 같다. 나의 글제 목록의 대부분은 길이나 지하철에서 추가되는 것처럼.)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조언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일부는 그 말에 감명받고 유의미한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누가 하는 어떤 말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다양하게 들어보고 다양하게 읽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 바꿔 말하면, 단 하나의 교양 에세이가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저 베스트셀러는 다수에게 도움이 되나...? 그냥 많이들 샀다고 하니까 뭔지도 모르면서 사놓고 인테리어로 사용하는 건가...? 에? 아뇨, 특별히 어떤 책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어 버렸네유. 방금 했던 말은 잊어버리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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