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7일 금요일 갑진년 계유월 갑오일 음력 8월 25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이야기는 그 대상에 따라 대화의 범위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 사람에게는 이 내용을 여기까지 말하고, 저 사람에게는 같은 내용을 저기까지 말하고... 같은 지점에서 시작해서 끝 지점에 차이를 두기도 하고, 아예 동일한 무언가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영역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용도 있을 수 있고, 막 숨길 만한 건 또 아니지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다. 아무래도 대화 상대와의 친밀도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등의 요인에 의해 그런 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가끔은 서너 명의 사람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데, 평소 그들에게 이야기하는 범위에 차이가 있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대화 수준을 맞출 것인가. 그게 참 미묘한 지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일관성 없게 행동하는 것 같다. 때로는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는 상대가 그 지인과 둘이 있었으면 굳이 언급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그가 내 친구와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함께 듣게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내 친구와 둘이 있었다면 더 자세히 얘기했을 내용을 다른 사람이 있어서 필터링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아주 가끔은 누군가를 없는 취급하고(...) 내 친구를 향한 말만 하기도 하고. (내 친구의 친구라 함께 만나곤 하지만 나와는 썩 좋은 관계가 아닐 때 이런 이유로 보통의 지인보다 오히려 많은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지인 중에는 유독 내 친구와 함께 만나는 일이 잦아 얼결에 나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물론 못할 말은 아니니까 하긴 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그 사람이 참 많은 것을 알고 있겠더라. 서울에서 종종 만나곤 하는 친구가 세 명이 있는데(물론 한 명은 과거형이다. 청년이음센터 시절에 자주 만났지...), 그 친구들을 만날 때 추가로 한 명, 그 사람이 껴 있는 경우가 꽤나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 친구에게는 이야기하고 저 친구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까지 그 사람은 다 들어버린 것이 종종 있다. 이제 와서는 그가 뭘 얼마나 알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하여간 그렇게 범위를 조절해 가며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은, 내가 범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말을 해야 하나 싶은 때도 있다. 막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친구 한정으로 얘기했던 내용을 나랑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근황처럼 전해 들어 알고 있는 것을 인지했을 때...라던가. 저 사람이 저걸 왜 알고 있지, 하면서 불편해지는 일이 아주 드물게 있었다. 비밀은 아니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나 싶다가도, 그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언가에 대해 말할 때 일일이 공개 범위를 언급하기도 뭣하니...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