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휘 Sep 28. 2024

#26 성장

2024년 9월 28일 토요일 갑진년 계유월 을미일 음력 8월 26일

최근에 서울청년 마음건강 지원사업의 마지막 상담을 마쳤다. 첫날 TCI 검사 해설을 해주신 것에 대해 작년에 청년이음센터에서 했던 거랑 결과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했더니 작년 결과지 가져오면 비교 분석 해주신다고 하여 마지막 날에 챙겨 갔다. 이 사업에서는 모종의 이유로 이런 검사의 결과지를 내담자에게 제공할 수 없고 현장에서만 사용 후 파쇄해야만 한다나. 다른 것보다 기질 영역의 '자극추구'와 '위험회피'의 값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흔히 TCI에서는 '기질은 변하지 않고 성격은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말이다.


작년의 검사에서는 '자극추구'와 '위험회피' 모두 백분율 50 언저리가 나왔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수치다. 그런데 올해는 그것이 80 90 언저리로 올라갔다. 상담사의 말에 의하면, 작년에는 세상을 등지고 있는 만큼 세상에 관심이 없었고, 무언가를 도전하지 않으니 위험할 일이 없어 그걸 회피할 필요성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타고난 것에 비해 움츠려든 상태로 결과가 나왔다나. 의욕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궁금한 것도 없고 그런 상태. 그러다가 이제는 좀 더 세상 앞에 나오려 하고 호기심을 갖기 시작하여 '자극추구'가 올라가고, 이에 따라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서 '위험회피'도 같이 올라갔을 거라고. 그래서 이건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지표라고 하더라. 그러다가 '아, 이 정도는 위험하지 않구나'를 인지해가며 '위험회피'는 또 내려갈 수도 있다고. 아마 TCI에서 말하는 '기질은 변하지 않고'는 고립 상태 같은 이상치가 제거된 후에 이 수치가 안정화된 상태를 말하는 거겠지.


청년이음센터 초기만 해도 상당히 소극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관계 회복과 이것저것을 위해 왔으면서 사람들과 최소한의 상호작용도 하지 않으려 하고 그저 프로그램만 형식적으로 참여하던. 그래도 신청한 프로그램은 빠지지 않고 잘 참여하긴 했다. 설명이 불친절하다는 이유만으로 참여를 거부한 프로그램도 몇 있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게 서울투어였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좋았다고는 하더라. 그리고 그 당시에는 과수면이 심해서 오전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7시에 일어나 놓고 늦잠이라고 주장하는 현재와는 달리 말이다.


1년 동안 지원사업의 수혜를 받았다고, 확실히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져서 바빠졌다. 예전 같았으면 관심이 가다가도 신청할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들도 과감하게 신청해 보기도 하고. 일경험 프로그램이 그랬고, Unlimit-Go 강습이 그랬다. 그리고 두더집 디자인 스터디도 채팅을 며칠 뒤에 확인했음에도 용기 내서 관심을 표했더니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한창 호기심이 앞서는 시기라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지만, 이 또한 안정되어 가다 보면 시간과 체력을 분배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적절히 조율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과의 상호작용도 많이 좋아졌다. 지원사업에서 알게 된 청년 중 사적인 만남을 갖는 사람이 세 명이나 생겼다. 그 외에도 그들과 함께 만나게 되는 사람도 몇 있기는 하지만 그들하고는 개인적으로 따로 만나지는 않으니, 나와 직접적인 연락을 통해 따로 만나는 건 세 명. 그리고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먼저 DM을 보내는 일도 종종 있다. 어쩌면 지원사업에서 독립한, 가장 보통의 친구 같은 느낌. 작년엔 솔직히 막연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1~2년 안에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의 길을 나아가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25 대화의 범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