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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Sep 29. 2024

#27 뭐시깽이

2024년 9월 29일 일요일 갑진년 계유월 병신일 음력 8월 27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가 종종 있다. 머릿속에 두루뭉술한 느낌만 있을 뿐, 구체적인 어휘와 표현은 찾지 못한다. 무언가 잘 설명할 수 있는 어휘와 표현이 있을 텐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것을 떠올릴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대화 상대가 나만큼이나 답답해할 테니 말이다.


그 뭐시깽이냐, 하고 대충 말을 하기도 한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사용하는 대명사일 뿐이다. 어딘가에서 거시기라고 하는 것과 유사한 표현인 것 같긴 한데, 그것에 비해 다들 낯설어하더라. 나로부터 이 단어를 처음 들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나는 어떻게 쓰게 되었냐고 한다면, 글쎄. 난 그냥 가족의 영향으로 계속 써 왔으니, 어쩌면 충청도에서 온 말이려나. 내가 사용하는 말이 서울과 경상도와 충청도의 혼종이라 뭐가 어디서 온 것인지는 명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대체로 서울말 기반인데 가끔 다른 게 섞여 있다고 하더라.


몇 해 전에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모르는 단어가 많아 검색을 해 가면서 대화를 한 적 있다. 가끔은 상대에게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물었지만, 그 단어를 명확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려운 단어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도 말로 설명하자면 쉽지 않다. "설명하다"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검색하는 동안 상대의 말을 놓치지 않게 상대에게 이 단어 좀 잠깐 검색해 보겠다고 한 뒤 사전적 정의를 확인하곤 했다. 사전적 정의를 통해서도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느낌은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쩌다가 한국어 어휘도 이 모양 이 꼴인 녀석이 되었는가. 학창 시절 내내 독서를 거부해 온 탓일까.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이들은 다양한 어휘와 표현을 접하며 다채로운 말을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던데. 주변에서는 잘 믿지 않지만 나는 늘 책 읽기를 거부해 왔다. 그러다가 20대 초반에서야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초기에는 기술서적 위주였고 말이다. 전공 교재를 보긴 해야 하니 그것을 읽었고, 전공과 유관한 분야이기는 하지만 학교 수업과는 무관한 다른 영역의 기술 서적에도 관심을 가졌다. 나는 교육과정 내 학습은 어영부영하면서 그 외 흥미를 느끼는 것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즐겨 왔기에, 내 흥미를 끄는 무언가에 대한 책은 그래도 좀 읽게 되더라.


기술 서적에서 시작하여 분야를 조금씩 넓혀 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읽는 것보다 안 읽는 부류의 책이 더 많다. 책에 대한 편식이 참 심한 편이다. 그런 녀석이 어휘력이 괜찮을 리가 있나. 그런 걸 생각하면 흔히 얘기하는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이라는 게 어느 정도일까 싶다. 어느 교육학 수업에서 문해력이니 디지털 리터러시니 하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마냥 요즘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긴 하다. 나는 20대에 들어서라도 책을 읽기 시작했고, 모르는 단어에 대해 검색이라도 하며 살았지, 나랑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그 자리에 머무르던 이들은 여전히 충격적인 수준의 어휘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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