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3일 금요일 을사년 신사월 임진일 음력 4월 26일
가끔 누군가 나에 대해 오해와 착각을 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굳이 정정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한다. 굳이 정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경우에는 자주 그런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동네가 어딘지 간략하게 소개했을 때 보통은 대충 서울 동부의 어딘가 정도로 인식하지만, 비슷한 동네에 사는 지역 주민의 경우 내가 언급했던 '어디 근처'에서 그 '어디'를 너무 구체적으로 잡아버린다. 엄밀히 말하면 그 '어디'는 우리 동네는 아니고 옆동네지만 큰 차이는 없으니 그냥 넘어간다. 지역 주민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가 날 그 '어디'가 있는 정확히 그 동네에 산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는데 굳이 정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구체적으로 어디 사는지는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으니 대충 그 어드메 산다는 걸로 충분하다고 주장해 본다.
어느 정도는 내가 의도치 않게 내 정보의 왜곡을 조장하고 있는 부분도 있긴 하다. 때로는 굳이 비밀로 하지 않아도 될 것을 비밀로 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밝히고 싶지 않은 정보가 종종 있더라.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었는지 같은 사소한 것조차 그럴 때가 있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이 또한 어디 사는지만큼이나 두루뭉술한 무언가로 넘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요즘은 별 거 아닌 정보는 조금씩 툭툭 던져 보기도 한다. 이런 거 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 이런 실습을 했다, 이런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걸 해보려 한다, 등등. 사소한 내 정보를 밝히는 데 익숙해지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좀 더 깊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누구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이야기하는 게 좋을지는 늘 애매한 문제다.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다 보면 내 이야기를 건너 건너 전해 듣고는 "이런 거 하신다면서요" 라든가 "~님이랑 ~했다고 들었어요"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살짝 왜곡된 정보일 때 어디까지 정정해야 할지도 늘 애매한 문제다. 아무튼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핵심이라면 기술교육원이든 학원이든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을까.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해 과장과 왜곡이 섞여 들어간 건 썰을 푸는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재작년에는 내 옆의 청년이 다른 사람에게 지난번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며 내가 했던 말을 자기가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 그냥 '그래 네 마음대로 얘기하세요~' 하고 생각하며 적당히 넘기기도 했다. 신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끊고 정정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사람은 끊고 정정해야 할 정도의 왜곡된 발언도 자주 하던 사람이라 가끔은 두어 문장 듣고 "아니 그게 아니고..." 하며 정정하는 일의 반복이었던 적도 있긴 하다. 아니 근데 크툴루를 그냥 바다 괴물 정도로 취급하면서 내가 그렇게 말해줬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얼탱이가 없잖아... 그래도 요즘은 자주 안 만나서인지 나에 대한 왜곡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내 친구에 대한 인지 왜곡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이야기 속 나래는 언제나처럼의 있는 그대로의 나래인데 거기서 뭘 느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