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일 화요일 갑진년 계유월 무술일 음력 8월 29일
아무래도 기억의 출력 시스템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하다. 입력 측 문제보다는 출력 측 문제가 확실히 맞는 것 같다.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기억에 대한 쿼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에 대해 물어도 명확하게 떠올리지 못하고 결국 "글쎄요"나 "몰라요" 따위의 대답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하염없이 고민만 하고 있는 것보다는 그런 대답이라도 하는 게 낫다고 배웠다.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하면 잘 안 되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대화하다가 특정 키워드에 반응하듯 찾아지는 기억들. 그런 때 보면 아무 문제없는 것 같은데 의식적으로 찾으려고 하면 잘 되지 않는다. 일상에서 사소한 것들을 잘 기억한다는 소리를 듣곤 하는데, 그 사례를 떠올리려고 하니 그마저도 잘 되지 않는다. 상대가 말해준 무언가에 대해서 그 사람과 대화하다가 그것과 유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거 지난번에 이래이래 했던 거 아니야?"라든가 "맞아 너 이래이래 해서 그걸 이래이래 했다고 했었던 것 같아" 따위의 말을 하곤 했는데 말이다.
최근에는 대화 카드라는 것을 이용하여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대부분의 문항에 대해 대답하지 못하고 넘겼다. 대답하기 곤란한 무언가라기보다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히 없진 않았는데 뭐였더라. 결국 뽑은 카드 중 내가 대답하는 데 성공한 카드는 반도 안 되는 양이었다. '성공'이라는 어휘를 마주치니 문항 하나가 생각난다. 정확한 표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긴장해서 실패했던 일이 있는가'에 대해 묻는 카드가 있었다. 이 또한 답변하지 못한 카드였다. 뭔가 있었을 법 한데, 내 기억의 범위 내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이미 구체성을 잃고 어렴풋한 이미지로만 남아버린 무언가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명확하게 답을 하기 어렵다. 설령 그것이 방금 전의 일에 대한 것이어도 말이다.
잊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정확히는 머릿속 어딘가에 있긴 한 것 같으니 완전히 잊히기보다는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 그게 잊히는 건가? 하여간 그래서 기록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던 게 또 언제인지 모를 언젠가의 일인데, 때로는 내가 그런 것을 기록하기로 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려서 몇 날 며칠을 기록을 못 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러고 보니 나, 기록이라는 것을 해보기로 했었지" 하며 떠올리곤 한다. 인스타그램 일일 기록처럼 하루의 마무리가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형태의 무언가를 하다 말다 반복한다. 올해도 그런 용도의 작은 스케줄러를 하나 받아놓고 어쩌다 한 번 쓸까 말까 했다.
기록하기 전에 기록하고자 하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그렇게 한 번 출력하고 나면 다시 출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즉각적인 후기를 나누는 시간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후기를 나누려 기억을 훑는 동안 나 혼자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자료들을 잃어간다. 게다가 그 순간에는 충분히 반추하고 사유하기 전이라 그것에 대해 유의미한 후기를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내 입장에서는 썩 좋지 않다. 보통은 혼자 집에 가는 길에 새어 나오는 기억에 대한 느낌을 반추하고 (절대 새어 나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기억을 더듬으려 하지 않는다) 충분히 여유롭고 유유자적한 시간 속에서 찬찬히 떠올려 보며 그것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기록을 남기고 나면 또 그것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는데, 차라리 흐려진 기억을 가진 채 내가 남긴 기록을 참고 삼아 대화하는 편이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