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일 수요일 갑진년 계유월 기해일 음력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름은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고.... 다음에 만났을 때는커녕 몇 분 정도 지난 뒤에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곤 한다. 특히 개인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집단으로 처음 만날 경우 그중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혹자는 집단 내 한두 명만 기억해도 본전이다, 라고 주장하지만 난 그 한두 명 기억이 안 된다. 한 번에 많은 정보가 들어왔을 때 특유의 정신없음으로 인해 모든 정보가 뒤섞이고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한 번은, 집단으로 만났지만 아예 한 명에게 집중해 버린 적도 있다. 언젠가 베이킹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갔을 때도 명씩 나눠 쓰는 게 있고, 네 명씩 나눠 쓰는 게 있었다. 난 우리 테이블에서 새로 만난 세 명을 모두 기억할 자신이 없기에 오직 옆사람에게만 집중했다. 이 사람 한 명 정도는 기억해 보자고. 그렇게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그 사람 자체를 기억해 보았다. 그리고 얻은 의외의 성과는, 누군가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서 이름을 들으면 이름을 먼저 들었을 때보다 기억에 잘 남는다는 사실이다. 이름이 궁금해질 때쯤 들어야 쉽게 기억한다.
듣자 하니 사람을 기억할 때 사진처럼 기억하는 자도 있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집합으로 기억하는 자도 있는데, 나는 후자에 가까울 것이라더라. 설명을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다. 사진처럼 기억하는 사람은 지난번 만남과 이번 만남의 이미지를 비교하여 상대의 달라진 점을 쉽게 찾아낸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자주 만나는 사람이 머리를 숏컷으로 자르거나 파마나 염색을 해도 쉽게 인지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름을 나중에 들었을 때 더 잘 기억하는 것도 새로운 이름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쌓아가는 것보다 이미 쌓여서 하나의 인물을 구성하고 있는 정보에 그 사람의 이름으로 라벨링을 하는 편이 더 수월해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수의 사람을 한 번에 만났을 때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각 사람이 가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정보가 뒤섞여서 개개인을 이루기 힘들기 때문이겠지.
언젠가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비슷한 이름이라면 좋은 첫인상으로 시작하고, 꺼려하는 사람과 비슷한 이름이라면 좋지 못한 첫인상으로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는데, 이건 비단 이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왠지 나에겐 외형의 첫인상보다 이름의 첫인상이 더 강하게 작용하지만, 외형의 첫인상도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는 사람을 닮은 외형을 가졌다면 그 사람의 인물 정보를 기반으로 새 정보 집합을 만드는 건가, 하며 IT업계의 fork라는 개념과 상속이라는 개념을 떠올려 본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처음 마주했을 때, '이 사람은 내 친구는 되기 어렵겠구나'라던가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식의 인식이 되는 경우가 있다. 살면서 쌓여 온 인간에 대한 빅데이터로 인해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부정적인 부분에서의 무의식적인 경고가 나오는 것 같다. 머릿속에 그런 경고가 뜨지 않은 사람하고는 그럭저럭 잘 지내는 편이다. 경고가 뜬 사람은... 그럭저럭 잘 지내보려고 하는데 항상 결국엔 일이 터지더라. 드물게 '이 사람 좋아!'라는 식의 긍정적인 반응이 오기도 하는데 거의 발생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발생한다면... 당신은 나에게 유의미한 존재로 남을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