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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Oct 03. 2024

#31 어긋난 정보

2024년 10월 3일 목요일 갑진년 계유월 경자일 음력 9월 1일

알려주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어가는 일이 종종 있다. 말하기 불편한 것일 수도 있고,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말할 생각을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나를 속이고자 하는 의도마저 존중한다. 대체로 그마저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대의 선택으로 존중해 주고 싶다.


내가 알던 정보와 상대의 말이 다르다 하더라도 대체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내 정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상대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 어쩌면 별다른 의도가 없었는데 상대가 가진 정보가 잘못되어 무언가 어긋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렴 어때.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난 아무래도 상관없다.


만약 그것이 중요한 문제라면? 글쎄, 중요한 문제가 뭘까. 아주 가끔은, 정보가 맞지 않는 것을 인지했을 때 내가 알던 정보를 짚고 넘어가는 일이 없진 않다. 보통은 진실에 대한 추구가 강해질 때 그러는 것 같다. 상대의 선택에 대한 존중보다 나의 지적 욕구가 더 강해질 때 물어보곤 한다. 언젠가 나의 애인이었던 자가 내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했을 땐 조금 껄끄러우면서도 그냥 넘어갔지만, 그것과 관련하여 '거짓말을 하면서까지'였다는 것을 전해 들었을 땐 결국 물어보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상관없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나의 판단에는 중요도보다 호기심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 상황이 개인적인 일이 아닐 경우에도 적당히 넘어가는 일이 많았는데, 이 부분은 조금 의식적으로 고쳐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이미 눈치채고 의아해하면서도 다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던 부분이 알고 보니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이슈였던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개인적인 일이었다면 그건 단지 "아니 님 그걸 왜 인제 알려줘유?" 하는 정도로 넘어가겠지만, 좀 더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게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냐, 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단지 그 문제의 정도가 덜 심각하게 느껴져서 겪어도 되는 이슈라고 느껴지...나? 그냥 언급할 생각을 잘 못하고 넘어가는 것 같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 정보의 차이를 즐기기도 한다. 내가 가진 정보들 중 서로 부딪히는 것이 있을 때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고 싶다. 그걸 바로 물어보지 않고 혼자 탐구하고 있는 건, 정답을 아는 것만큼 그걸 풀어가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이겠지. 방탈출에서 힌트 쓰기 꺼려하는 것과 비슷한 것일 수도 있겠다. 분명 단편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상대의 선택에 대한 존중이었는데, 다른 정보와 맞물려 어떤 모순을 일으킬 땐 그건 문제 풀이의 핵심 단서에 대한 접근이 되어 버린다. 정답 그 자체보다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에 더 흥미를 느끼는 편이라, 그런 핵심 단서는 최대한 뒤로 미룬다. 보통은 내 추론을 마친 후에 물어봄으로써 나의 추론이 맞는지 판단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쯤 되면 이건 문제풀이 중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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