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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Sep 06. 2024

#3 어느 날 문득

2024년 9월 5일 목요일 갑진년 임신월 임신일 음력 8월 3일

습관을 형성하는 데 21일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21일은 습관들이고자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시간이고 유의미하게 '습관'으로 남는 데는 66일이 걸린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다 과학적인 근거가 없고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제각각의 기간이 걸린다는 말도 있다.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그중 마지막 주장을 지지한다. 나의 습관은 대체로 저 숫자들과는 무관했기 때문이다.


새벽에 적당히 자고 남들 다 출근하고 있을 시간에 미적거리며 일어나던 녀석이 자정 전에 잘 준비를 하고 다음 날 오전 6시에 일어나는 삶을 살기까지 며칠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가. 소위 미라클 모닝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도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노력했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지속하다 포기했는지, 혹은 언제쯤부터 큰 노력 없이 해낼 수 있게 되었는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미라클 모닝이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무조건적으로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각자의 성향에 맞게 살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한동안 빨라야 8시에 일어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어차피 오전에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일정이 존재하지 않았고, 망가진 생활패턴을 해결할 여력도 없었다. 그러다 뭐라도 해봐야 하는데, 하며 충동적으로 광고에 뜬 미디어 콘텐츠 제작 분야의 일경험 프로그램을 신청해 버렸고, 그대로 선정되어 일주일 동안 9시에 시작하는 사전직무교육을 듣게 되었다. 교육장까지는 서울 2호선 반 바퀴만큼의 거리가 있어 8시쯤에는 나가야 했다. 게다가 소셜 미디어 이벤트로 획득한 일주일짜리 헬스장 이용권을 그 주에 써야 하는데, 9시부터 18시까지는 사전직무교육을 들어야 하고 저녁에는 월요일 빼고 일정이 다 잡혀 있어서, 가려면 새벽 밖에 없었다. 결국 일요일까지만 해도 적당히 미적거리며 일어나던 나는 일주일 동안 6시 반에 헬스장에 갔다가 8시쯤 그곳에서 나와 교육을 들으러 가서는, 교육이 끝난 후에는 다른 일정을 하나 더 소화하고 집에 가는 삶을 살게 되었다.


사실 필요에 의해 일찍 일어나는 것은 짧은 기간에는 비교적 쉽게 해낼 수 있는 영역이긴 하다. 아침 비행기로 여행을 가기로 한 날 새벽 일찍 일어난다거나, 어딘가에 오픈런하기 위해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굳이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는 상황에서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인다면?


사전직무교육 이후 본격적인 일경험이 시작되기 전까지 일주일 공백이 있었다. 우리의 이력서를 기반으로 기업과 매칭되고, 필요에 따라 면접이나 과제 수행이 요구되는 기간이었다. 더 이상 새벽같이 일어날 필요가 없던 나는 다시 늘어지기 시작했다. 일경험은 13시에 출근하여 18시에 퇴근하는 기업으로 매칭되었고, 이론상 11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낮 시간을 모두 회사에서 보내면 내 시간은 오전과 저녁 밖에 남지 않는데, 오전을 그런 식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적당히 느긋하게 일어나면 오전이 사라져 버리기 쉬운 근무 조건이라, 일찍 일어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기업 매칭이 확정된 목요일의 일이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그냥저냥 보내다가 월요일에 일찍 일어나려고 했는데 9시다. 이 시간에 일어나서 안 될 건 없지만,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일찍 일어날 수 있느냐하고 별개로 밤에 가까운 새벽보다 아침에 가까운 새벽을 선호하기에, 개인적으로 새벽까지 깨어 있는 것보다는 일찍 일어나 아침 시간을 활용하는 게 더 낫다. 새벽 서너 시까지 깨어 있는 것보다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는 편이 효과적이다. 물론 난이도 자체는 전자가 더 쉽긴 하다. 하여간 아침에 일어나서 뚜렷하게 할 일이 없어서 동기부여가 안 되는 느낌이라, 아침에 일어나서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월요일 밤에 자기 전에 문득, 아침에 일어나서 글을 써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무언가 끄적이기 시작했다. 사실 브런치에는 내년쯤 다른 주제의 글을 연재해 보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냥 매일 아침마다 꾸준히 글을 발행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 날도 6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또 그 다음 날도 그렇게 하고 있다. 습관이 들기까지는... 어라? 시간이 걸렸나?


내 삶에는 이렇게 어느 날 문득 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문득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며, 그렇게 하고 싶은 동안 지속된다. 긴가민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현상유지편향을 가지고 있지만, 명확히 기다 아니다가 판단이 된다면 바로 실행해 버리고, 바로 그만둬 버린다. 누군가는 습관을 형성하는 데 두어 달이 걸린다던데, 남들이 들으면 불합리하다고 할 것만 같다. "나는 이렇게 노력해서 겨우 습관을 들이는데, 저 녀석은 왜 저렇게 바로 해내는 거죠?" 글쎄, 난 보상이 없는 내면의 동기부여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외부로부터의 보상이 있는 동기부여는 나에게 별다른 자극을 주지 않지만, 내가 마음먹은 것들은 그냥 그대로 어느 날 문득 시작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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