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 MBTI 2

2025년 9월 2일 화요일 을사년 갑신월 갑술일 음력 7월 11일

by 단휘

누군가 나에게 MBTI를 묻는다면 나는 슈뢰딩거의 MBTI라고 주장하곤 한다. 검사할 때마다 달라지는데, 네 자리 모두 변동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T/F는 대체로 T고 어쩌다 가끔 F가 나와 T라고 주장하곤 하지만 나머지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I/E는 대충 어떤 느낌인지 이해했다. 선천적으로는 E 성향이 강하지만 고립과 은둔의 시간 속에서 I화된 상태다. 그래서 본성이 드러나는 편안한 상태에서는 E 성향이 강한 편인 반면, 상대를 경계할 때는 I 성향이 드러난다. 가만히 있길 답답해하고 나돌아 다니는 것을 즐기며 하루에 두세 가지 일정이 매일같이 있어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언제나 변함없지만 말이다. 활동성에 비해 사교성이 많이 떨어져 I 성향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많지만 완전한 탈고립이 이루어져 고립의 흔적이 사라질 때쯤이면 사교성도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S/N은 늘 어중간한 정도인 듯하다. 감정이 들뜬 상태에서 아무 말에 가까운 잡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지만 한쪽 성향으로 치우치지 않은 것 같다. J/P도 어중간한 정도였는데 점점 P화되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체계적인 걸 좋아하기는 하는데 잘하지 못해 스스로에게 타협해 간다고 해야 하나. 애초에 MBTI라는 게 성격 검사가 아니라 선호도 검사다 보니, J를 추구하는 게 높게 나왔다가 그것을 추구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가 그것을 잘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닿지 못할 지점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여전히 나의 역량을 선택할 수 있다면 체계적인 녀석이 되고 싶기는 하다.


오늘은 새삼 T 위로법의 메커니즘을 인지했다. 상대가 서운함을 느낄 때 그가 더 이상 서운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F 성향이 강한 사람이 당장의 서운함을 해소하는 데 집중한다면 T 성향이 강한 사람은 재발 방지에 집중하는 거겠지. 서운한 일이 생길 때마다 사후 감정 관리를 하는 것보다 애초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인터넷 밈에서는 주로 "감정보다는 사건 자체에 집중한다"는 식으로 마치 감정이 없는 녀석 취급을 하기도 하는데, 상대의 감정에 관심이 없었다면 "음, 글쿤. 유감." 정도일 뿐, 재발 방지 같은 건 내 알 바 아니다. 내 알 바 아닌 사람에게는 "음, 글쿤. 유감."에 최소한의 사회성을 가미하여 마음에도 없는 간언을 하고 넘긴다. 확실히 나의 출력값은 T 성향에 가깝다. 때로는 감정적인 뭐시깽이가 F 성향으로 드러나긴 하는데 그 부분은 명확하게는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MBTI 유료 검사에서는 ISTP가 나왔다. 뚜렷한 값을 원하는 MBTI 맹신론자에게는 이 값을 답하곤 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내용 중에 가장 공감되는 건 ENTP이긴 하다. 아주 오래전 나의 첫 번째 MBTI 결과가 ENFP였던 걸 생각해 보면 이쪽이 좀 더 본성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원래의 내가 어땠든 간에 당장 가장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일반적인 값은 ISTP에 가까운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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