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 계획

2025년 9월 8일 월요일 을사년 을유월 경진일 음력 7월 17일

by 단휘

학창 시절, 방학 계획 세우기든 신년 계획 세우기든 계획을 세우는 일은 나에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요즘도 매년 이렇다 할 목표와 계획 없이 새해를 맞이한다. 체계적인 것을 선호하면서도 "극P" 성향으로 취급받는 데에도 이러한 특성이 한몫했을 것이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계획을 세우지 못하게 하는가. 문득 계획을 세우길 거부하는 다른 이들은 어떠한 이유에서 그러는지 궁금해진다. 생성형 AI한테 물어보면 일반적인 이유를 알려주려나. 요즘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던 것들에 대해 이유를 묻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하여간 나의 이유 중 가장 크게 차지하는 부분은 예기불안이 아닐까 싶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려고 하면 불확실한 변수들이 자꾸 떠올라 명확하게 내용을 정리하지 못한다. 부분적으로 두루뭉술한 계획은 러프한 계획이 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두루뭉술한 계획은 계획이 되지 못한 사고의 흔적일 뿐이다.


장기 계획은 세우지 못해도 오늘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하루 계획을 러프하게 작성해 보던 때도 있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고정 일정 외에는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지만. 요즘은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사후기록에 가까운 형태로 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있다. 이전처럼 시간대를 나누어 표기하는 건 동일하지만 그 시간대에 할 일을 적는 게 아니라 한 일을 적는 것이다. 무엇을 했는지와 더불어 무엇을 느꼈는지도 적으면 좋고. 계획보다는 회고가 성향에 잘 맞는 것 같다.


최근에는 회고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계획의 수립-이행-회고 세 단계가 있다면 보통은 수립-이행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뒤의 회고 단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춰 보자는 것이다. "계획을 세운다"보다는 "회고의 기준을 설정한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식의 계획이라면 나도 그럭저럭 할 수 있지 않을까. 행위는 다르지 않을지라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 청년플랜브릿지 참여하면서 이런 느낌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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