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I 검사를 통한 자기 이해

2023, 2024에 이은 세 번째 TCI 검사

by 단휘

2023년에 청년이음센터 성북 권역에서 TCI 검사를 했다. (후기) 그리고 2024년 마음건강지원사업에서도 했는데, 그때는 결과지를 제공해주지 않으셨다. 가볍게 훑어보고 넘기더라. 재검사를 하게 될 경우 변화 추이를 보고 싶었는데, 결과지를 현장에서만 보고 참여 청년에게 제공할 수 없다나. 다른 모든 검사에서는 제공이 되었는데 왜 마음건강 지원사업에서만 제공이 안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검사는 5점 척도 140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과지는 전체적인 것을 보여주는 백분위 그래프와 하위 척도에 대한 백분위 그래프, 총 두 페이지로 구성된다. TCI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해 본 적 없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까 검사지 우상단에 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라고 적혀 있다. 하여간 TCI 검사에서는 인성을 기질과 성격의 조합으로 본다. 기질은 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인내력, 네 가지 척도로 구분되고 성격은 자율성, 연대감, 자기초월, 세 가지 척도로 구분되며, 각 척도는 세 개에서 다섯 개의 하위 척도로 구분된다. 기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며 좋고 나쁜 게 없는 개인의 특성이고, 성격은 변화 가능하며 수치가 높을수록 좋다.




스크린샷 2025-11-02 08-50-08.png 나의 TCI-RS 프로파일

기질의 네 가지 척도를 살펴보자. 자극추구새로운 즐거움과 보상에 대한 욕구로, 이것이 높으면 지루한 것, 익숙한 것을 참기 힘들어하고 한 가지를 깊게 하기 힘들어 할 수 있다. 이거 하다 말고 저거 하다 말고의 반복이 될 수 있음을 주의하라나. 대신 무언가에 흥미를 느끼면 그것이 큰 동기부여가 된다. 반대로 자극추구가 낮으면 적절한 보상으로 동기부여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지만 관습적이고 익숙한 것을 묵묵히 잘 해나갈 수 있다. 나는 흥미를 쫒는 녀석답게 자극추구가 높게 나왔다. 역시 내 흥미를 끄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스크린샷 2025-11-02 10-47-22.png 나의 TCI-RS 하위척도 중 자극추구(NS)

하위척도를 보면 특히 충동성과 자유분방이 높게 나온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충동적인 선택 후의 관성적인 지속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충동성이 높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위의 두 하위척도는 첫 검사와 거의 동일하게 나왔는데 아래 두 하위척도는 전에 비해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자기보고식 검사다 보니 전에 검사할 땐 체계적이고 절제된 사람에 대해 멋있다고 생각하여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게 어느 정도 투영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하고.


위험회피위험 요소에 대한 경계로, 이것이 높으면 예기불안이 높고 위기 대처 능력 또한 높다. 웬만한 문제 상황은 이미 예측한 범위 내에 있어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다. 때로는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사전에 방지하거나 대처법을 마련해 뒀을 수도 있다. 그만큼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평소의 일상적인 상태에 겁이 많고 긴장한 채 살아갈 확률도 높지만 말이다. 반대로 위험회피가 낮으면 두려움 없이 낙천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스크린샷 2025-11-02 10-47-44.png 나의 TCI-RS 하위척도 중 위험회피(HA)

위험회피 하위척도도 전체적인 양상은 전과 비슷하다. 예기불안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좀 더 높아졌을 뿐. 삶을 끝낼 방법을 찾지 못해 관성적으로 살아가던 시절에는 미래를 고민하지 않아 그런 부분에 있어서의 불안과 두려움이 실제보다 덜 드러났던 것일 수 있겠다.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니 본능적인 두려움이 확 올라오는 거겠지.


나는 자극추구와 위험회피가 모두 높게 나왔다. 이 둘은 엑셀과 브레이크 같은 녀석으로 보통은 반비례한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둘 다 높게 나오는 경우는 자극은 원하지만 두려움이 커서 안전한 자극이 필요하다나. 연비가 떨어져 쉽게 지칠 수 있다고 하더라. 어느 정도 흥미를 느끼는 것에 대해서도 위험부담이 있다면 불안을 넘어설 정도의 흥미가 아니고서야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흥미가 어느 정도 있긴 하기에 미련은 남고, 그런 딜레마.


사회적 민감성타인의 감정과 사회적 신호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나타내며, 이것이 높으면 눈치가 빠르고 관계지향적이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떻게 이야기하면 상대가 기분이 덜 나쁠까?" 하는 점을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말을 한다. 반대로 낮으면 감정 동요가 적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떤 말을 했을 때 상대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간과한다. 난 이 수치가 한 자릿수가 나올 만했다. 나로 인해 불편한 감정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사과하고 싶은데, 아니 애초에 그런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하고 싶은데, 상대가 어떤 맥락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꼈는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심지어는 상대가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했다" 하는 점을 설명해 주어도 그게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사과는 할 수 있지만 재발 방지는 안 되기 때문에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안 될 텐데. 상대도 나의 형식적인 사과를 바라는 게 아니라 언행을 고치길 바랄 것이고 말이다. 사실 이런 인간적인 감정 교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싶어서 대본을 읽고 연기를 했던 게 크다.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크린샷 2025-11-02 10-48-15.png 나의 TCI-RS 하위척도 중 사회적 민감성(RD)

사회적 민감성의 하위 척도도 두 개는 거의 그대로고 나머지 두 개만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평균에서 평균 초과로 올라간 자극추구 & 위험회피와 달리 백분위가 1에서 6으로 이동하는 정도의 차이라 아주 큰 차이는 아니긴 하다. 정서적 감수성이 평균 미만 밑바닥에서 평균 미만 치고 조금 높은 편으로 올라갔다. 이 또한 첫 검사 때는 사람들이랑 상호작용을 안 하고 사느라 실제보다 더 낮게 측정되었던 거 아닐까 싶다. 독립에서 의존 방향으로도 비슷한 양만큼 올라갔는데 마찬가지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생각보다 덜 독립적인 녀석이었음을 인지하게 된 것 같다.


인내력무언가를 꾸준히 하게 하는 자질로, 이것이 높으면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크고 성취지향적이며, 반대로 낮으면 현재에 만족하는 편이다. 무언가 하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잘 안 맞는다 싶을 때 인내력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갈고닦아 반드시 이루어내려고 할 것이고 인내력이 낮은 사람은 깔끔하게 내려놓고 다른 욕구를 찾아 나설 것이다. 언뜻 보기엔 인내력이 높아야 좋은 것 같지만 무작정 붙잡고 있기보다는 이것저것 건드려 보며 시행착오를 거치는 게 더 좋은 상황도 있기에 한쪽이 특별히 더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한다.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바라보던 시절에는 인내력이 높은 게 무조건 좋게 취급되었지만 요즘은 다양한 삽질 속에서 무언가 얻어걸릴 수도 있고 다양하게 해 보는 것도 좋다나.

스크린샷 2025-11-02 10-48-37.png 나의 TCI-RS 하위척도 중 인내력(PS)

변화가 있던 기질 수치는 대체로 값이 올라간 반면 인내력은 낮아졌다. 인내력도 사회적 민감성과 마찬가지로 수치가 크게 차이 나는 건 아니긴 하다. 이 녀석도 5만큼 이동했다. 근면과 끈기는 눈에 띄게 낮아졌고, 완벽주의도 꽤나 높아졌다. 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추정에서 해보니까 잘 안 되네 하는 현실을 인정하게 된 느낌이다. 완벽주의에 대해서는 내가 그런 성향이 크진 않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인식하는 최소치가 보통보다 약간 위라는 걸 인지하면서 평균 정도로 올라간 것 같기도 하고.


기질은 에스컬레이터와 같아 정방향으로 가는 데에는 노력 대비 성과가 크지만 자신의 기질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노력한다면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고 이루어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기질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성숙한 성격으로 기질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나.




그렇다면 성숙한 성격은 무엇일까. 성격의 세 가지 척도를 통해 알아보자. 자율성은 선택과 결과에 책임을 지는 책임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줄 아는 목적의식,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뜻하는 유능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수용, 그리고 자기 신념대로 행동하는 자기일치, 이렇게 다섯 가지 하위척도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자기수용만 평균 범위에 있고 나머지는 평균 미만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목적의식이 상당히 낮게 나온다.

나의 TCI-RS 하위척도 중 자율성(SD)

청년이음센터 성북 권역에서 검사했을 때랑 비교하면 각 하위척도의 상대적인 위치는 비슷한데 전체적으로 낮아졌다. 성격 척도는 수치가 높을수록 좋다는데 왜 역행했을까. 어쩌면 큰 변화는 없는데 실제보다 괜찮은 녀석으로 인식되고 싶다는 욕구가 2년 전의 검사를 오염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건강 지원사업 때의 결과지도 같이 보면서 전체적인 추이를 비교해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청년이음센터 때는 지원사업 수혜 2년 차 들어선 시점이라 좀 더 "뭐라도 해봐야지!" 하는 느낌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지금은 "그래서 뭘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면서도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한 상태라 자율성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연대감은 사회의 일원이라는 느낌으로, 개인과 개인의 연결보다는 전인류적인 연결을 의미한다. 신뢰가 쌓이고 받는 경험이 쌓이면 연대감이 늘어난다나. 희생적으로 주기만 하면 인류애가 떨어지고 신뢰가 낮아질 수 있는데, 상대에게 의존하는 법을 배우고 도움을 청하는 용기를 가지면 연대감을 높일 수 있다나. 연대감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타인수용,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공감, 타인과 협력하고 win-win 할 수 있는 이타성,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관대함, 원칙과 기준을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공평, 이렇게 다섯 가지 하위척도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대체로 중간쯤 나오는데 공감과 공평이 조금 낮은 편이다.

스크린샷 2025-11-02 10-02-56.png 나의 TCI-RS 하위척도 중 연대감(CO)

그래도 전에 비해 공감이 올라가긴 했다. 공평은 워낙 차별과 편애가 심하다 보니 할 말이 없다. 잡다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인류애가 떨어져서 애정이 가는 사람들만 편애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인류애를 회복할 수 있을까. 잊을 때쯤 되면 한 명씩 인류애를 떨어뜨리는 사람이 나타나는데 말이다.


자기초월은 철학적인 느낌이 강한데, 스스로를 생태계의 일원, 우주의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들을 신경 쓰는 자의식과 이에 대비되어 무언가에 무아지경으로 몰두하는 창조적 자기망각,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서 인식하는 우주만물과의 일체감, 내가 감각한 것만 이해하는 합리적 유물론과 이에 대비되어 세상의 뜻과 의지를 인식하는 영적수용, 이렇게 세 가지 하위척도로 구성되어 있다. 자기초월은 나의 성격 척도 중 유일하게 2년 전에 비해 높아진 척도다.

스크린샷 2025-11-02 10-38-33.png 나의 TCI-RS 하위척도 중 자기초월(ST)

창작 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평균 미만이었던 창조적 자기망각이 평균 범위로 올라온 것 같다. 우주만물과의 일체감과 영적 수용은 이전이랑 비교했을 때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것 같진 않고. 자의식 쪽으로 치우쳐져 있던 부분이 창조적 자기망각 쪽으로 이동한 게 자기초월 수치를 평균 미만에서 아슬아슬하게 평균 범위에 들어오는 쪽으로 이동시킨 모양이다.




타고난 기질을 인정하고 성격을 개선해야 한다. 옳고 그른 기질은 없지만 성숙한 성격이 기질을 빛낼 수 있다고. 성숙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어떠한 기질이든 좋은 방향으로 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성격 부분에 부족한 게 많지만 분명 개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삶은 늘 과정이니까.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지만 휴리스틱한 선택의 반복이 날 그럭저럭 괜찮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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