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언저리를 살아가는 녀석을 바라보며
올해는 작년보다 괜찮게 시작한 것 같다. 늘 그렇듯 연초에는 무기력하거나 의욕이 없는 등 가라앉아 있는 날도 많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전반적인 상반기 느낌은 괜찮았다. 무인월 중반쯤부터 이미 겨울의 기운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던 것 같다. 상반기에 고정적인 일정이 있는 삶을 살면서, 확실히 이런 삶이 좋더라. 뚜렷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거창한 목표가 있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유의미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다. 방구석에서 반쯤 죽어 있는 녀석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브런치북을 연재해 보기로 했다. 사실 갑진년 끝자락부터 할까 말까 했던 건데, 일단 초안을 작성해 보고 글이 어느 정도 써질 것 같으면 연재하기로 했다. 기획을 시작한 게 병자월 중순의 일이니, 한 달 반 정도만에 연재를 시작했다. 기획 단계에서 목차 구성도 좀 바뀌었다. 공개하기 시작하면 잘 안 써지는 나의 특성을 알고 있기에 초안을 어느 정도 완성한 뒤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연재 당일에는 초안을 검토하고 수정할 것을 수정한 후 적당한 시간에 발행 예약을 걸어 놓았다. 일정한 시간에 발행되면 좋을 것 같아서 예약 기능을 사용했다. 브런치북 한 권은 60분 이내가 적당하고 700자 정도가 1분으로 취급된다고 하여 최대한 그것을 넘기지 않으려고 분량 조절을 했다. 분량 조절을 하며 써 본 첫 글인 것 같다. 제목은 〈지원사업 3년 차, 어디론가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하고 싶었으나 길이 제한으로 인해 뒷부분만 남겼다. 브런치북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년도 사업의 연장선으로 청년기지개센터에서 진행하는 전통무예 체험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호신술과 국궁은 하루씩 빠질 것 같아 신청을 안 했는데, 특공무술이랑 해동검도 출석부에 개인사정으로 불참한다는 글귀가 많이 보이는 걸 보니 그냥 신청해 버릴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회차가 많으면 하루 정도 빠지더라도 신청을 했을 텐데 4회기짜리 체험 프로그램이라 25%의 결석률은 나의 무의식이 거부한다. 국궁은 그래도 중학생 때 살짝 체험해 봤고 활 잡는 법이나 양궁과의 차이 같은 건 대충 기억나서 크게 아쉽진 않지만, 호신술은 나도 배워보고 싶다고 체크해서 제출했던 건데 참여하지 못한 게 좀 아쉽긴 하다. 어릴 때 검도를 배워보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피아노나 배우라며 안 보내줬던 걸 이제라도 조금 배우게 되어 좋았다. 할 줄 아는 무술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는데 꾸준히 배우러 다니는 것도 쉽지 않겠지.
그렇게 목검을 휘두르고 다니는 사이에 이번 연도 기지개센터 OT 일정이 나와, 무인월 말에는 OT에 참석했다. 오전에 진행된 1회 차로 신청했는데, 내 친구는 아침에 일어날 자신이 없어서 오후에 진행된 2회 차로 신청했다고 하더라.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려나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오전이 오히려 오후보다 아는 사람이 많았다. 가장 먼저 눈 마주친 청년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내 뒤편으로도 익숙한 사람들이 여럿 있더라. 1회 차 참가자들과 대화를 하다가 2회 차 참가자들과도 인사 나누고 오후까지 있다 갔다. 해소되지 않고 묵혀 두었던 감정에 대해서 많이 편해지는 시간이었다. 내년에는 전체 OT 없이 진행될 거라는 소문이 있던데… 아무튼.
무인월에 면접을 보고 온 서울시 기술교육원 디지털콘텐츠디자인과에 다니게 되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이것은 계미월 초까지 이어진다. 언젠가 블로그에 공부 흔적을 남기던 게 떠올라 이번에도 기록을 남겨볼까 싶더라. 무엇을 배웠는지 일일이 적는 건 비효율적일 것 같고, 내가 느끼고 성장한 점 위주로 써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브런치북으로 연재하면 나에게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부여할 수 있을 듯하여 〈기술교육원 학습일지〉를 연재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기묘월이 끝나갈 무렵, 갑진년 말에 시작한 Inkscape Manual 번역 프로젝트를 마쳤다. 아니, 일단은 마쳤다. 원문이 업데이트되면 이에 따른 정기적인 유지보수를 해주는 게 좋겠지. 다른 기여자가 나온다면 누가 하든 상관없겠지만 일단 현재로서는 소프트웨어 번역 쪽도 동결인 것 같고, 안내서 번역은 나 혼자 했으니 당분간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PO 파일을 이용한 번역 작업은 처음이라 조금 삽질한 부분도 있었다. Sphinx 문법에서 지원하는 것과 지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명확한 문서를 찾지 못했고, 문서 검증에 대한 안내문도 찾지 못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에는 CONTRIBUTITNG.md 와 같은 이름의 기여자 지침 문서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Inkscape 프로젝트에는 그게 없었다. 내 Merge Request에 대한 댓글에서 하신 말씀에 의하면 기여자 지침 문서를 조만간 작성하려고 한다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지침이 완성되어 사람들이 좀 더 쉽고 편하게 오픈소스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Inkscape 외에도 아직 문서화가 덜 된 모든 프로젝트 화이팅!
경진월에 들어서는 기술교육원 금요일 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금토일 중에 아무 때나 영상 두세 개를 시청하면 된다고 했는데, 나중 가니까 막판에 몰아 들으면 힘드니 그때그때 들어 놓으라고 하시는 걸 보아 꼭 그 주에 시청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금요일에는 강의실에 오지 않아도 되지만 원한다면 와서 강의를 듣거나 과제를 해도 좋다고 하셨다. 교단에 식권이 있으니 평소처럼 점심에 급식을 먹고 와도 된다고 하고 말이다. 나는 집에서 강의를 듣는 것보다 강의실이 더 쾌적하고, 오늘은 어디 안 나가냐는 가족들의 관심도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에 평소와 같은 시간에 나가 그곳에서 영상을 시청하기로 했다.
이것저것 시험을 많이 봤다. 컴퓨터그래픽기능사와 웹디자인개발기능사, 그리고 전자출판기능사 자격증을 한 번에 털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번에 전자출판기능사 시험은 열리지 않아 나머지 두 개만 빈자리 접수로 필기시험을 보고 왔다. 둘 다 따로 공부하지는 않고 사전 지식만으로 온라인 모의고사를 한 번 풀어본 뒤 괜찮겠다 싶어서 그대로 시험을 보러 갔다. 온라인 모의고사에 비해 모르는 문제가 더 많이 나왔지만 그럭저럭 합격선은 넘겼다. 기술교육원에서 단체로 GTQ 시험도 봤는데 감점 요소 없이 100점이 나왔다. path도 단순하고 연습했던 것에 비해 꽤나 쉽게 나오긴 했다.
대학생 때부터 뽑아야지 하다가 몇 년을 미뤄온 사랑니를 드디어 뽑았다. 오른쪽 아래 사랑니에 가끔 통증이 느껴지던 게 점점 더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는 바람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마취가 풀릴 때쯤 통각이 느껴지다가 하루 자고 일어나면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의 감각만 남았다. 마취 풀린 직후의 통각도 발치 직전 오른쪽 아래에서 느껴지던 통각에 비하면 별 거 아닌 정도였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크다던데 난 당일 저녁 식사만 죽을 먹고 다음 날부터는 일반식을 먹을 수 있었다. 별로 붑지도 않고 가족들도 사랑니 발치 다음날 쌈밥(…)을 먹으러 가서야 내가 사랑니를 뽑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정도로 티가 나지 않았다. 입안 가득 채우는 음식을 먹으며 한쪽으로만 씹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문제 되지는 않았으니 괜찮은 거 아닐까 하고 주장해 본다.
동북권 서울청년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에 참여하러 다니다 성동구에서 하는 인스타툰 강의를 듣게 되었다. 나루 님이 진행하는 3회기짜리 프로그램이었는데 유용한 팁과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 강의를 모두 마친 후에는 인스타툰 작가 채팅방에 초대받았는데, 열 명 조금 넘는 인원이 수업을 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실제로 인스타툰을 시작한 건 세 명 정도밖에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시작은 했지만 굳이 채팅방에 들어오거나 업로드 사실을 밝히지 않거나. 이때 기획했던 건 다냐x하유 일상 개그물이었는데, 하유 모티브에 다냐 설정을 넣은 캐릭터와 다냐 모티브에 하유 설정을 넣은 캐릭터, 그리고 주변 친구들을 뒤섞은 캐릭터, 이렇게 삼인방을 주인공으로 하는 툰이었다. 모종의 이유로 다냐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는 등장하기도 전에, 본격적인 개그물이 시작되지 못하고 배경 설명을 하고 있는 와중에 그만두게 되었다. (이런 데에서 시대유감 정신이라니.) 경진월에는 서울청년센터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기지개 청년들이나 두더집 청년들과의 사적 모임도 종종 있었다. 상반기 중 가장 활동적인 시기였던 것 같기도 하고.
컴퓨터그래픽기능사 실기 자료를 받아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받은 시점부터 시험까지 3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은 풀이 영상을 보면서 연습했는데, 한 문제당 세 시간 정도 걸렸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영상 없이 처음 풀어보았을 때 160분 정도 소요되었으며, 일주일 정도 더 지나니까 두 시간 정도 걸리더라. 처음에 영상을 보면서 공부하기 시작했을 땐 이걸 어떻게 만들라는 건지 막막했는데, 하다 보니 그럭저럭 할 만했다. 한 문제를 이틀에 나누어 풀다가 두 시간 정도면 풀 수 있게 되고부터는 하루에 한 문제씩 풀었다. 신사월 말에 시험을 봤는데 210분의 시험 시간 중 110분 정도만에 다 풀고 나왔다. 흥미로운 건, 25개 정도 되는 공개 문제 중 내가 처음으로 영상 없이 혼자 풀어봤던 문제가 출제되었다는 것이다. 시험을 보고 기술교육원 수업을 들으러 강의실에 들어갔더니 포트폴리오 제작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더라. 그날부터 월화에 하나, 수금에 하나, 그렇게 이틀에 하나씩 무언가를 만들어 갔다.
신사월 말에는 알라딘에서 운영하는 투비컨티뉴드라는 창작 플랫폼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글은 브런치에 연재하고 툰은 투비에 연재한다. 기존에 기획했던 개그일상물 말고, 그냥 일상 루틴 형성을 위한 일기에 가까운 무언가를 시작했다. (이 또한 이제는 과거형이지만 말이다. 지금은 리뉴얼하면서 일기 느낌은 아니게 되었다.) 언젠가 갤럭시탭을 사용하던 시절에 인스타그램에 그려 올리던 지극히 사적인 일상툰을 몇 년 만에 리뉴얼 재개한 것이다. 리뉴얼 재개하면서 캐릭터 외형 업데이트를 안 해서, 지금의 외형과는 많이 다른… 지원사업 이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내 모습에 가까웠다. 브런치에 매거진을 연재하고 마스토돈에 공유하고, 인스타그램에 인스타툰을 올리고 투비에 옮긴 후 투비 링크를 마스토돈에 공유한다. 결과적으로 마스토돈에 나의 이것저것이 쌓여가고 있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에서 소셜 네트워킹은 하지 않고 게시물 공유만 하는 녀석이 되어 버렸다.
기술교육원에서는 그저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기간이었다. 웹 디자인 시간에는 웹 퍼블리싱을 배우긴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것을 기반으로 포트폴리오 웹 사이트를 만들었고, 이틀에 하나씩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던 건 계속 이어지며 그 작업물을 포트폴리오 책자 형태로 만드는 작업도 진행되었다. 어떻게든 거의 밀리지 않고 따라가면서도 이 속도가 맞나 싶었다. 10개월 과정이 5개월 과정으로 단축되며 교육과정만 줄어든 게 아니라 포트폴리오 제작에서도 시장 조사라던가 협업이라던가 하는 게 다 빠져서 그저 내 생각을 끄집어내서 표출하는 느낌이었다. 현업에서는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취업을 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 일을 하게 될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어 가는 것만 같다.
임오월 중순에는 늘 그랬듯이 서울국제도서전 구경을 갔다. 누군가와 온전히 함께 부스를 돌긴 처음이었다. 작년에는 같이 돌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혼자 빠졌으니. 물론 편하기는 혼자 다니는 편이 편하긴 하다.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내 마음대로 움직이면 되니까. 하여간 이번에도 실컷 구경하고 몇 권 충동구매 해버렸다. 올해는 뭔가 이전에 비해 아쉬운 느낌이었는데 그 느낌의 정체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큰 출판사 부스도 뭔가 애매했던 느낌. 인기인을 보러 온 사람만 몰렸을 뿐, 인파만 많고 실질적인 참관객의 비율이 떨어졌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올해의 “다냐 픽! 지극히 사적인 올해의 책”은 『에디토리얼 씽킹』이라고, 터틀넥프레스라는 곳에서 출간된 책이었다.
2회 때 열리지 않아서 응시하지 못했던 전자출판기능사 필기시험을 접수하고 시험을 보러 갔다. 낯선 용어가 많이 나온 것 같으면서도 2회 때 시험 본 컴퓨터그래픽기능사 필기시험 및 웹디자인개발기능사 필기시험에 비해 더 높은 점수로 합격 기준선을 넘겼다. 일단 필기시험은 다 마쳤으니 3회 실기 접수 기간에는 전자출판기능사와 웹디자인개발기능사 모두 접수하려고 했다. 의욕이 있을 때 처리해 둬야지. 그리고 이왕이면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하기 전에 자격증을 확보해 놓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계획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5개월 과정으로 진행된 기술교육원 교육 기간이 끝났다. 다만 끝내지 못한 작업도 있고, 8월 말까지는 야간반 수업 전 시간대에는 자유롭게 이용해도 된다고 하여 포트폴리오 작업 및 기능사 실기 준비를 위해 수료 이후로도 자주 가려고 했다. 모종의 이유로 일주일 정도만 가고 못 갔지만. 수료 직후 일주일 동안은 포트폴리오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직후 2주 정도는 기술교육원 방학 기간이라 문을 안 연다고 하더라. 야간반과 장기 과정 수강생들이 쉬는 기간이라나.
기술교육원 방학 기간에 나는 언젠가 신청해 놓은 프로그램들을 참여하다가 춘천과 홍성에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 그렇게 여행을 가 보는 게 처음이라 춘천 여행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내가 타지에 가는 건 보통 그 지역 생활권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함이지 여행 목적으로 어딘가에 가지는 않는 편이다. 지원사업에서 알게 되어 친해진, 이제는 친구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비록 내가 무언가를 준비하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에겐 하나의 도전이 되었다. 그 여름에 거리를 거니는 것은 상당히 체력을 소비하는 일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좋았고 언젠가 또 함께 할 의향 있음이다.
춘천 여행을 가기 직전, 금요일 16시 무렵. 센터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기술교육원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포트폴리오 완성 되었냐면서 다음날인 토요일 오전 10시까지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를 보내라고 하시더라. 포트폴리오는 수료 후 한 번 컨펌받고 피드백을 반영한 후 수정사항에 대한 피드백을 받지 못한 상태였지만 일단 대충 완성은 되어 있었다. 자기소개서는 백지였지만. 특별한 양식도 없고 그냥 써서 제출해야 하는 거였는데, 일단 어떻게든 써서 오전 9시쯤 제출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 춘천에서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기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면접 일정을 잡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이로 인해 몇 주 동안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되었다.
한 달 정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한 기간. 업무 시간은 일경험 참여하던 때랑 비슷했던 것 같다. 어렵더라. 기술교육원에서는 디자인 기초, 기술적인 부분만 배웠는데 바로 실무를 하려고 하니… 단상자가 단상자인 것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난 정말 아는 게 없더라. 제품 디자인 조금이랑 상세페이지 디자인 조금을 했다. 기술교육원에서는 Adobe CS6을 사용했는데, 최신 버전의 Adobe CC를 처음 사용해 보았다. 조금 낯설지만 기술적인 부분은 금방 적응했는데, 디자이너가 없는 기업의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출근을 하다 보니 내가 다 할 줄 안다는 전제 하에 시켜서 어려움이 컸다.
하반기 기술교육원 개강 전에 포트폴리오 책자를 출력하러 갔다가 교수님과 스몰토크를 나누었다. 근황 이야기도 하고 인스타그램 계정 이야기도 하고 프리랜서 이야기도 하고 미래청년일자리 사업 이야기도 하고. 계획에도 없던 미래청년일자리 사업 참여 신청을 하게 되었고, 갑신월 말에 면접을 보러 갔다. 나까지 세 명이 면접에 참여했는데, 나머지 둘은 마케팅 직군으로 지원했고 나만 디자인 직군으로 지원했더라. 입사 지원 면접 같은 건 전혀 경험이 없다 보니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조차 모르겠었는데 그래도 엄청난 경쟁률을 가진 일반적인 취업 준비가 아니라 일자리 사업이라 그나마 그럭저럭 흘러간 것 같다.
을유월부터 미래청년일자리 출근이 시작되었다. 첫 사흘은 참여 기업으로 출근하는 게 아니라 AI온라인콘텐츠 분야의 모든 참여 청년이 모여서 사전 교육을 들었다. 사업에 대한 소개도 듣고 레크리에이션 같은 활동도 하고. 낯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건 역시 어색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다. 교육 기간이 지나면 어차피 안 볼 사람들이니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할 마음은 안 들었지만. 짧게 만나고 스쳐 지나갈 사이에서는 늘 거리를 두며 대하게 된다. 어찌 되었건 사전 교육 기간이 지난 후에는 각자의 참여 기업으로 출근했다. 면접 때 봤던, 같은 회사로 가는 청년 분들은 사전 교육 기간 내내 거의 마주치지 못했다.
중간에 어느 주말에는 기능사 시험도 보러 갔다. 사실 이번에 웹디자인개발기능사와 전자출판기능사를 모두 털고 싶었으나, 전자출판기능사는 주말에 시험을 볼 수 있는 시험장이 너무 먼 곳 밖에 없었다. 시험을 위해 연차를 쓰고 싶지는 않았고. 연차는 안 쓰면 돈으로 준다고 하는데 결국 나중에 다른 이유로 다 써버리긴 했지만. 원래 기술교육원 수료 후에 포트폴리오 작업 하면서 기능사 시험 준비하려고 했던 걸 프리랜서 출근하면서 못 하게 되는 바람에 준비는 많이 못 했는데, 그런 것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자신이 없는 부분이 포함된 유형의 문제가 나왔고, 코드를 까먹어서 작성 못 하고 있다가 뒤늦게 기억나서 작성한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어찌저찌 합격 커트라인은 넘겼다. (전자출판기능사는 이번에 열린 것도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신청을 못했다는 건 여담.)
오전에 기능사 시험을 본 날 저녁에는 생명사랑밤길걷기 행사에 참여했는데, 그 사이에 계획에 없던 일정이 추가되었다. 지원하였으나 선정되지 못했던 청년플랜브릿지 3기에 추가 선정 되었는데, 그 첫 시간이 그 사이에 끼어 있던 것이다. 덕분에 9-12시의 시험 시간 중 11시 30분에는 나와야 지각을 면하는 촉박한 일정이 되었지만,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을유월의 토요일은 대체로 청년플랜브릿지 그룹밀착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보냈다.
병술월은 대체로 미래청년일자리와 청년플랜브릿지 개인밀착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인밀착 프로그램은 주말에 진행된 그룹밀착 프로그램과 달리 평일 낮에 진행되었는데, 덕분에 총 3일 주어지는 연차를 6번의 반차로 나누어 여기에 모두 사용해 버렸다. 미래청년일자리는…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상반기에 몇 개월 짧게 배운 걸로 실무를 하려고 하니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게다가 사회생활 경험도 없고 말이다. 실력이 있거나 사교성이 있거나 둘 중 하나라도 되면 나머지 하나는 어느 정도 커버가 되는데, 둘 다 없으니 겉도는 느낌이었다.
병술월 말에는 서울청년센터 강동에서 하는 체험형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3주 만에 책 한 권을 읽는 건 벅차더라. 나의 읽기 속도를 아득히 넘어서는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건 그거 나름대로 괜찮은 시간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자주는 아니고 아주 가끔은 이런 시간을 보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새로운 책을 읽기보다는 언젠가 내 템포대로 읽었던 책을 독서 모임 전에 빠르게 복습하고 참여하면 좋을 것 같더라. 언젠가 그럴 기회가 된다면 말이다. 체험형 독서모임을 마칠 때쯤 서울청년센터 강동 모닝페이지 동아리 추가 모집 링크를 공유해 주셨는데, 나는 신청하였으나 응답이 오지 않았다. 추가 모집에 선정되지 못한 모양이다.
출근이라는 걸 하다 보니 큰 틀이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게 직장인의 삶인가 싶기도 하고. 청년플랜브릿지 개인밀착 프로그램은 정해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미래청년일자리 사업도 늘 그렇듯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얼레벌레 진행되었고 말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과 이것저것 몰아치는 순간의 반복. 우선순위는 모르겠고 제대로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는. 사수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언젠가 본격적인 취업을 하게 된다면 사수가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출근과 퇴근이 있는 삶은 참 좋은데 사수가 없는 게 아쉽다.
이것저것 미루고 있던 것도 많고 계획하였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던 것도 많았는데, 청년플랜브릿지 회복메이트를 계기로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던 게 이 무렵이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어떻게 나아갈지. 그동안 지원사업의 수혜를 받으며 쌓여 왔던 게 청년플랜브릿지 개인밀착 프로그램에서 구체화되다가 회복메이트에서 발현되기 시작한 느낌. 언젠가 해야지 하고 계속 미루고 있던 것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2026 다이어리에 대한 것도 생각을 해 보았다. 2025 다이어리는 그럭저럭 잘 소비했는데, 2026 다이어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보통 12월 중순은 되어야 다음 해 다이어리가 들어오기 시작해서 아직 실물 다이어리를 비교 분석하기는 어려운 시기였지만, 청년플랜브릿지 회복메이트에서 4개월짜리 리바이브 다이어리를 받으니 2026 다이어리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더라.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병행해볼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 새로운 형태의 스케줄러를 하나 얻게 되어 그것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미래청년일자리 사업 마지막 달이었다. 사실 사업 초기까지만 해도 연말쯤 되면 어느 정도 적응하고 익숙해져서 그럭저럭 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어려움투성이었다. 회사생활 자체에 대한 회의감도 생기고. 출근과 퇴근이 있는 삶은 참 좋지만, 딱 출근하는 순간까지만 좋다. 역시 드는 생각은, 사수가 있는 환경이었으면 뭔가 달랐을까. 몇 개월 해본 게 다지만 디자이너의 일을 계속할지는 의문이다. 특히 마지막 몇 주가 가장 힘들었는데 마지막 날에는 공황이 너무 심하게 와서 문장 구사가 잘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일반 사회에 편입되고자 하는 중기 목표가 장기 목표로 더 멀어져 간다.
무자월 중순쯤에는 서울시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촬영과 서면 모두 가능하다고 응답하였으나 일자리사업 근무 시간과 인터뷰 촬영 시간이 조율이 되지 않아 서면으로만 진행되었다. 나와는 맞지 않는 애매한 질문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당사항 없는데요’ 하지 않고 ‘그럼 어땠는데요?’ 하는 후속 질문을 상정하고 답변을 해서 보내 드렸다. 인터뷰는 서울시 미래청년기획관 블로그에 업로드되었다. 게시물에 넣을 사진은 다른 인터뷰 게시물과 결을 맞출 만한 사진은 없어서 기지개센터 프로그램 참여 사진과 공간 이용 사진, 기술교육원 참여 사진 등을 몇 가지 보내 드렸다. 아무 사진이나보다는 그런 사진들이 그나마 괜찮을 것 같았다. 인터뷰 전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양력 기준 새해가 되었을 때 사람들이랑 해돋이를 보러 갔다. 청년이음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청년기지개센터에서 만난 사람들이 함께 갈 예정이었는데 아침 일찍 이동하는 것에 대한 부담으로 청년기지개센터에서 만난 분들은 전날 못 가겠다는 연락을 주시더라. 청년이음센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침 일찍 이동하기 힘들 것 같아서 전날 자취방에 모여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로 했는데, 다른 분들은 잘 모르는 청년 집에서 하룻밤 묵기도 부담스럽고 아침에 일찍 이동하기도 힘들고 해서 선택지가 없었던 것 같다. 몇몇 분들은 이전에도 해돋이를 함께 보러 간 적 있었다는데 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1년의 시작이 언제인지는 인간이 임의로 정한 것이고 새해라는 건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해 왔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더라.
청년플랜브릿지 회복메이트 모임이 있었다. 첫 모임은 수료식 날 하고 두 번째 모임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이는 안 오더라. 3기뿐만 아니라 1, 2기 분들도 올 수 있는 모임이었지만 반 이상은 다 나와 같은 3기였다. 옆자리에 앉은 1기 청년은 청년플랜브릿지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회복메이트 모임에서 보니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마지막 모임은 한 달 뒤에 진행될 텐데 이것저것 지원해 놓은 거 선정되면 불참하게 될 거라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인사를 드리고 왔다.
서울시 시정 서포터즈에 지원했는데 추첨에서 떨어져 예비선발 상태에 놓여 있다가 선정자가 모종의 이유로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는지 서류를 보내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특별한 부적격 사유가 없다면 참여하게 되겠거니 하고 있을 때 최종 선발 연락이 왔다. 그런 의미에서 회복메이트 마지막 모임은 불참 확정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사회적협동기업 내비두에서 하는 10주짜리 다시&새롬 말 되찾기 프로그램 또한 처음 2주 참여하고 4주 동안 빠지게 되었다. 꽤나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이라 아쉬웠는데 그래도 다들 축하해 주시더라.
서울시 시정 서포터즈에서는 인쇄기에 종이 채우는 것 같은, 어딜 가든 사무실에서 있을 법한 일들을 하실 때 불러서 설명해 주시기도 하더라. 기본 업무는 새로 개발 중인 시스템에 대한 검토다. 공공기관은 필요한 게 있을 때 직접 개발하지 않고 외부에 발주하는데, 그 1차 시안을 검토하여 피드백을 전달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기축월이 끝나고도 열흘 정도 더 이어지겠지만 그럭저럭 흘러가고 있다. 사무실에 존재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개인적으로는 미래청년일자리에서 갱갱해진 것에 대한 재활 같은 느낌이다.
교보문고 겨울 필사 챌린지와 브런치스토리 독서 챌린지에 참여했다. 아침에는 리바이브 다이어리 작성 후 오늘의 문장을 필사하고, 저녁에는 타이머를 켜놓고 책을 읽는 삶. 일상 루틴이 조금은 자리 잡히는 것 같다가도 잘 모르겠다. 관성적으로 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야지. 하루에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몇 시간씩이나 있다는 걸 새삼 인지했다. 뭔가 하고 싶은데 뭘 하면 좋을지 찾지 못한 느낌. 하고 싶은 걸 해야지 하다가도 막상 하려고 하면 미루게 되는 건 왜일까.
생각날 때마다 그 달에 있었던 주요 활동을 적어보고, 연말에 그것을 기반으로 전체적인 흐름을 작성해 보았다. 양이 많아서 분기별로 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고정적인 출퇴근 일정이 생기면 업무 외적인 삶은 줄어들 테니까 일반 사회로 편입되면 적을 내용도 줄어들겠지 싶기도 하고. 연초에 했던 것들이 가물가물해질 때 끄적이는 것보다 양이 얼마나 되었건 분기별로 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병오년에는 주요 활동 작성하다 봄이 끝날 무렵에 어떻게 할지 판단해 봐야겠다. 봄의 기록을 남길 것인가 아니면 한 해의 기록으로 넘길 것인가.
요즘은 뭔가, 나 한 몸 챙기기도 벅차서 이것저것 많은 걸 놓치고 사는 것 같다. 나의 병오년은 지금보다 나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