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 성장

2025년 11월 28일 금요일 을사년 정해월 신축일 음력 10월 9일

by 단휘

어제는 오랜만에 센터에 일찍 가 보았는데 사람이 많더라. 아마 북파티를 하는 날이라서 그런 것 같다. 임의의 책을 읽고 문장을 필사하거나 한줄평을 쓰면 후원도서 한 권을 주신다. 나는 9월 초에 다른 데서 받은 책을 아직도 읽느라 북파티 후원도서를 비롯한 밀린 책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을 필사하고 책을 받았다. 반쯤 농담으로 기지개 청년들 문집 《기지개 모아 무지개》로도 북파티 참여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된다고 하길래 이번엔 거기에 있는 에세이에서 필사 문구를 발췌했다. 센터 로비에 박제된 문장을 좀 더 부끄러우라고(?) 하단에도 사진으로 첨부해 본다. ㅋㅋ


하여간 그곳에서 같은 권역 청년 분도 만나고, 연초에 보고 되게 오랜만에 보는 청년 분도 만났다. 그 둘이 아는 사이인 게 신기했다. 권역 청년과 나는 서로 그분을 어떻게 아냐고 하고 있고. 생각해 보면 내 권역 청년 분은 저쪽 동네 프로그램도 많이 참여했으니 접점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 같은 프로그램 참여하러 온 청년 분까지 넷이서 프로그램 시작 전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조합의 사람들이었지만 꽤나 괜찮았다. 내 친구들 말고 다른 사람들하고도 실컷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좋네.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 4년 차 들어서면서 확실히 이전과 다른 느낌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 1년 차 끝자락에 자조모임을 계기로 한 번 삶이 급변하듯 개선된 적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비슷한 상태가 유지되다가 4년 차에야 한 단계 더 올라가는 느낌이다. 모임터나 센터에 존재는 하지만 나아가려는 의지는 없던 녀석에서 탈고립을 희망하는 녀석이 되었다가, 이제는 탈고립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을 등지고 지낸 몇 년의 시간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탈고립 성공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애초에 삶의 스펙트럼에서 '고립'과 '고립이 아님'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나 싶긴 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 지점까지 말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참여 소감을 한 명씩 이야기할 때도 나의 성장을 느꼈다. 언젠가 참여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좋았습니다" 따위의 짧고 단순한 말밖에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불만을 느끼며, 몇 문장씩 길게 자신이 느낀 바를 늘어놓는 사람들에 대해 멋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니, 꽤나 많다. 그런데 이번에 참여 소감을 발표하면서 내가 그렇게 이것저것 늘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꾸준히 글을 써온 영향인지, 과제처럼 감정일기를 쓰던 영향인지, 매주 후기를 남기며 회고를 하는 시간을 가진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단 하나의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거겠지. 아무튼 그냥, 좋다.


기지개센터 북파티에서 필사한 문장. 《기지개 모아 무지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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