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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Oct 10. 2024

#38 지능

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갑진년 갑술월 정미일 음력 9월 8일

요즘 새삼 사람들 사이의 지능 편차에 대해 느끼곤 한다. 그동안은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최근 몇 주 사이에 그럴 만한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얼마나 늘어놓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큰 충격을 주는 사람을 지난 몇 주 동안 세 명 정도 만났다. 그들은 모두 최근에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인데, 알면 알수록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을 보이곤 하더라.


이전까지는 나보다 지나치게 수준이 높아 내가 못 따라가는 사람은 있어도 반대로 나보다 지나치게 수준이 낮다고 생각되는 이들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수준이 높은 사람은 내가 모르는 어휘와 표현을 물 흐르듯 사용하여 마치 로렘 입숨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했다. 비대면이 일상이 되었던 시기에는 디스코드 너머의 낯선 말을 구글에 검색해 가며 대화를 이어간 적도 있다. 때로는 단순한 일상적인 대화조차 나로 하여금 머리를 쓰게 만들더라.


쓰다가 생각해 보니, 그동안 마주친 지능이 낮은 이들이 몇 명 더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언젠가 나의 스터디원들 중 유독 말귀를 못 알아먹는 녀석이 두어 명 있었지. 남들은 두루뭉술하게 방향만 잡아줘도 알아서 해나가던 것을 하나하나 짚어주어도 헤매는 녀석들이었다. 나에게 신천지 포교를 하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많이 부족한 녀석이지만 웬만하면 끝까지 끌고 당겨주려고 했는데, 하는 기억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존재 자체가 기억 밖으로 사라져 있는 이들이 종종 있는 것 같다.


고등학생 때는 투명한 종이를 여러 겹 쌓는 것과 비슷하다는 레이어에 대한 설명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전교권 학생에 대해 답답함을 느낀 적 있었다. 뭐, 이건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 가끔 그렇게 사소한 영역에서 답답함을 야기할 때가 있었다. 교육과정 내의 학습 내용을 잘 암기하여 성적만 좋고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많이 떨어지는 일부 고학력자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당시에는 내가 나 자신에 대한 통제가 많이 부족했고 날 것 그대로의 감정과 사고를 드러내는 상태였다 보니 그 녀석에게 상당히 대놓고 부정적으로 대했던 것 같기도 하고.


지능이 지나치게 높은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 에너지가 빠르게 소비되고, 지나치게 낮은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 SAN치가 빠르게 소비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능 수준이 비슷한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게 서로에게 유익할 때가 많다. 대학생 때의 졸업작품 파티원들이 딱 서로에게 시너지를 줄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편차까지는 잘 지내는데, 지능의 정규분포 중심부 사람들하고 상호작용할 땐 전혀 문제가 없지만 좌측 구석에 있는 사람과 우측 끝자락에 있는 사람은 좀 힘든 것 같다.


문득, 내가 초기 학습 능력이 높은 이유도 알 것 같다. 그 분야에 대한 재능이 있어서 빠르게 배운다기보다는 그것도 지능의 영역인 것 같다.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단체로 한 검사에서 상위 몇 퍼센트인가라고 했으니 남들보다 어느 정도 높은 편이겠지. 그리고 당장 필요한 것 이상으로 학습할 열정은 없기에 기초 단계를 넘어서면 학습 속도가 떨어지다가도, 필요하다면 또 금방 배운다. 어쩌면 문득 생각난 걸 툭 던졌을 때 "아니 그걸 왜 인제 알려줘요"라는 반응이 오곤 하는 것도 그런 걸 떠올릴 수 있는 지능이 일반적인 수준보다 높아서인 걸까? 물론 나 또한 종종 나보다 지능이 지나치게 높은 상대와 상호작용하며 어려움을 느낀 바가 있기에 내가 완전 톱클래스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정규분포의 우측 어딘가에 있는 존재로서 중심부와 비교했을 때 말이다.


나는 좌측 구석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만 지능의 편차를 느끼는데, 반대 방향으로 지능의 편차를 느끼는 우측 끝자락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지능의 편차를 느낄까. 일단 그들은 나하고도 편차가 느껴지는데...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답답함을 느끼며 고독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쩝... 뭐든 적당한 게 좋은 것 같다. 지능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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