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갑진년 갑술월 무신일 음력 9월 9일
스몰토크 단골 주제지만 나는 썩 좋아하지 않는 무언가. 최근에 느낀 건데 이건 사람을 만나다 보면 피하기 쉽지 않은 주제더라. 자신의 MBTI를 들먹이며 무언가를 합리화하려는 사람도 있고, 상대의 MBTI를 요구하며 그것으로 그 사람을 규정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별다른 의도 없이 그저 침묵을 거부하는 스몰토크 목적으로 물어봐서 상대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관심도 없는 사람도 있다. 난 그렇게 억지로 이어가는 대화보다는 자연스러운 침묵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MBTI를 묻는다면, 나는 대체로 모른다고 대답한다. 스몰토크가 이어지기 쉽지 않은 대답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굳이 이런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도 않고, 애초에 내 MBTI를 모르는 것도 사실이다. 검사를 해보면 되지 않냐고? 그... 해봤는데 그냥 할 때마다 값이 달라지는 것뿐이다.
모른다고 하면 꼭 그걸 추측해서 어떤 값을 제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주변의 추측조차 의견이 갈리기도 하지만. 토요일에 오전 오후로 일정 잡아놓고 친구들과 밤까지 시간을 보낸 후 다음 날 오전에 성남시에서 하는 교육을 받으러 갔을 때, I 성향을 가진 사람은 일정을 그런 식으로 짜지 않는다며 E라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확실히 휴식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하기보다는 계속 소비해 가며 새 에너지가 차오르는 편이긴 하다. 반면 대부분의 고립 청년들이 그렇듯 사회성과 사교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가지고 I 성향이 강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보통 내향적인 것과 내성적인 것을 구분하지 않는 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N과 S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리는데, 주로 내가 아무말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는 걸 자주 보는 이들은 N 성향을 주장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S 성향을 주장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굳이 따지자면 S 쪽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기는 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말이다. T와 F의 경우 꽤나 명확한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서 F 성향이 나올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확실히 나에게 감정으로 호소하는 건 대체로 의미 없는 일이다. T적 발언으로 F 성향을 가진 이에게 상처 주지나 말라는 소리도 듣기도 하고. 가끔 플러팅 할 때나 F스러움이 살짝 드러나기도 한다나.
P와 J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의견이 갈리는 영역이다. "너 같은 무계획의 극치가 어떻게 J 성향을 주장하냐"고 하는 경우도 있고, "P 성향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체계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다양한 주장을 듣고 생각해 봤을 땐, 후천적으로 P 당한 선천적 J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너무 오랜 시간 당장 눈앞의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불확실한 환경에 살아왔고, 즉흥성과 유동성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반쯤 포기한 채 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나를 맡기는 편이 낫다고 해야 하나.
늘 관측하기 전까진 그 값을 알 수 없고 관측할 때마다 값이 달라지기도 하며 양자 상태로 존재하는 나의 슈뢰딩거 MBTI를 관측 없이 주변의 반응만으로 판단하자면, 위와 같은 통계적인 추론을 거쳐 ESTx 비스꾸레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 묻는다면 그냥 적당히 ESTP나 ESTJ 정도로 대답해 버릴까. 요즘은 자신의 MBTI를 모른다고 하면 자신의 혈액형을 모른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오곤 하니까 말이다. 아, 여담이지만 나는 헌혈의집 가기 전까지 내 혈액형에 확신이 없긴 했다. 그래도 높은 확률로 B형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O형이었고... 아무튼 뭐, 그런 거 좀 모를 수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