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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Oct 30. 2024

#57 반추

2024년 10월 30일 수요일 갑진년 갑술월 정묘일 음력 9월 28일

지나간 날의 기억을 반추하곤 한다. 뚜렷한 어느 지점에 대해 매몰되기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있던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천성이 느지막한 녀석이라, 어떤 순간에는 도저히 인지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반추하는 과정에서 인지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 주로 나의 감정이 그렇다. 당시에는 잘 모르겠다고 넘긴 수많은 이야기들을 나중에 혼자 멍하니 생각해 본다. 여전히 모르겠는 경우도 있고, 문득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겠지만, 그 이유조차 나중에 뒤늦게 인지하기도 한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어떤 의도가 담겨 있었는지, 그 모든 것을 왜 그 순간에는 알지 못하는 걸까. 나 자신에 대한 것을 이렇게 뒤늦게 파악하다 보니 놓치고 사는 것들도 많은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 순간에 알 수 있었다면 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지 몰라서 하고 싶다고 말하지 못한 것들도 종종 있다. 분명 옆에서 물어봤는데 그 당시의 나는 내가 원하는지 몰랐지.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냥 그 순간에는 모르는 거다.


뭔가 괜히 마음에 안 들었던 것도 그 이유를 알았다면 좀 해소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때로는 영 해소되지 않을 거라는 걸 인지하게 되어 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최소화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상성이 안 맞는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누구 하나 잘못한 것도 문제인 것도 아니지만 그저 상성이 안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함께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 잘 맞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려고 하기보다는 상성이 맞지 않음을 인정하고 관계를 끊는 편이 서로에게 더 나은 경우도 있더라. 결과적으로 상대를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누군가 나의 생각을 물었을 때 당장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가 몇 날 며칠이 지난 후에야 "있잖아 생각해 봤는데..." 하며 말을 꺼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주로 이반과의 대화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사고 지연 및 사고 두절 이슈를 알고 이해해 주는 녀석이라 나를 많이 기다려 줬다.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중에 생각나면 말해달라고 하고 넘어가는 것들이 많았다. 대화하다 중간에 사고가 끊겨 대화를 쫓아가지 못해도 맥락을 설명해 주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의 이러한 특성을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상대를 답답하게 만들기 마련이지만 말이다. 누군가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 나의 삶에 있어 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청년이음센터나 청년기지개센터에서 만난 이들을 대체로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서로 자세히는 몰라도 각자가 가진 이슈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니까. 밖에서 만난 이들이 대체로 '정상'과 '보통'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고 사람을 대할 때, 우리는 서로가 '정상'이나 '보통'에서 조금 벗어나 있을 수 있다는 걸 존중하고 대하니까. 이런 것도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지 몇 개월이 지나서야 느끼고 있다. 처음엔 그 사람들이 편하진 않았지만 그저 누구하고라도 함께 있고 싶어서 뒤풀이에 참여하고 모임에 나갔던 거였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서로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구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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