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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Nov 03. 2024

#60 일정

2024년 11월 3일 일요일 갑진년 갑술월 신미일 음력 10월 3일

캘린더에 들어있는 게 많은 사람은 몇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다. 매우 계획적이어서 모든 일정을 다 계획해 놓고 그것을 기록해 놓는 사람이 있고, 무계획의 극치로 살다 보니 일정을 기록해 놓지 않으면 까먹고 불참하거나 다른 일정을 잡아 버려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록해 놓는 사람이 있으며, 그런 성향적인 것과는 별개로 그냥 바빠서 이것저것 많이 표시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까먹음 방지 목적이 크다. 학부생 때는 수업을 빼먹지 않기 위해 모든 수업 15분 전에 알람을 맞춰 놓곤 했다. 이따가 적어 놔야지 하고 까먹은 일정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른 일정을 추가로 잡은 적도 있다. 여러 가지로 일정과 관련해 데인 게 많아서 기록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추첨을 통해 선정되는 일정도 일단 불확실한 일정임을 명시해서 작성해 놓는다. 그리고 일정에 대한 세부 정보를 일정의 메모칸에 붙여 넣는다. 일정에 대한 공지 메시지 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매번 일정이 정해질 때마다, 심지어는 아직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정을 기록해 놓는 편인데, 가끔 그런 일정의 기록이 누락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기록이 누락된 일정은 높은 확률로 나의 인지 범위 밖에 존재한다. 그렇게 기억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일정은 챙기기 어려워진다. 일정에 대한 리마인더 연락이 오는 경우에는 그 연락을 받은 시점에라도 뒤늦게 일정을 표기하기도 한다. 한 번은 그렇게 뒤늦게 표기하려고 보니 그 사이에 다른 일정을 잡아 놓은 경우가 있었는데... 썩 좋은 경험은 아니었으니 잊지 말고 잘 기록하도록 하자.


어떤 이들은 이렇게 기록해 놓지 않아도 일정을 잘 챙기던데 엄청난 재능인 것 같다. 그들은 보통 자신은 애초에 일정이 별로 없어서 헷갈릴 것도 없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래도 일정이 얼마나 있는지와는 별개로 일정을 놓치기 쉬운 유형 자체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냥 하면 되는데 왜 질문을 하지?' 하는 교수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라고 해야 하나. 일정이 너무 많아서 어느 일정이 언제 잡혀 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개별적인 일정의 유무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 이번 달에 일정이 단 하나 잡혀 있어도 기록 없이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데 말이다.


하여간 나는 매일 있는 일경험 프로그램 같은 고정 일정마저도 다 기록을 해놓다 보니 주변에서는 얼핏 내 캘린더 위젯을 보게 되면 뭐가 그렇게 일정이 많냐고 물어보곤 한다. 그곳에 적혀 있는 일정 중 대부분은 일경험처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어느 정도 자리 잡혀 있는 일상적인 일정이다. 자신의 일정을 잘 파악하고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작성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정들. 구글에 연동하지 않고 노션에서만 사용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정 기록까지 포함하면 거의 하루 종일 무언가로 채워져 있긴 하다. '대충 아침에 한 시간 정도 글을 끄적이고...' 같은 러프한 일정을 표기해두지 않으면 비어 있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아 정말 '뭐라도 해야지'의 영역으로 작성해 놓은, 대체로 잘 지켜지지 않는 개인 일정들이다. 나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디렉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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