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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Nov 04. 2024

#61 막연한 두려움

2024년 11월 4일 월요일 갑진년 갑술월 임신일 음력 10월 4일

뚜렷한 원인이 있어서 피하는 게 아니라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들이 종종 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것들로부터 도망치게 만들었는가. 분명 무의식의 심층에는 그 원인이 있겠지만 난 그곳에 닿지 못한다. 그렇게 겁먹은 채 거부하는 것 중 일부는 언젠가의 과거에는 했던 것들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이하여 난 그것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는가.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 기억이다.


대표적인 걸로 비행기가 있다. 언젠가는 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하는 것. 수학여행마다 매번 제주도로 갔고 그 외에도 몇 번 탄 적이 있을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빠가 무슨 이벤트 당첨되었다고 모르는 사람들이랑 괌 관광 갔다가 엄마 선크림 바르고 알레르기 세게 와서 입국 심사에 약간 시간이 걸렸던 기억도 있고 말이다. 뭐, 타야 하니 탔지만 그때도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던 것 같긴 하다. 비행기 자체보다는 공항에서의 이것저것 절차를 거치는 과정이 싫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건 어느 정도 이유가 있는 거긴 한데, 버스도 예전엔 탈 수 있었다. 지하철을 더 선호하긴 하지만 버스도 타긴 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혼자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요즘은 버스 자체를 못 타겠다. 내릴 곳을 계속 신경 써야 하는 시내버스보다는 일단 타면 목적지까지 크게 신경 쓸 게 없는 고속버스가 더 나은 것 같긴 하다. 지하철에 비해 정류장이 명확하게 인지가 안 되고, 교통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이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야기하는 것 중 일부일 것이다. 요즘은 버스로 가면 빠른데 나 때문에 지하철로 돌아서 가는 상황이 썩 유쾌하진 않아서 버스로 이동하는 일정에 따로 간다고 하거나 빠지는 경향이 있다. 내 핸드폰 이슈인지 모바일 기후동행카드가 버스에서 유독 태그가 잘 안 되는 것도 요즘 버스를 더 피하게 되는 데 한몫하는 듯.


자전거도 초등학생 때 배우긴 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체육 수행평가 때 자전거 타기가 있었는데, 좋은 점수를 받진 못 했어도 일단 어떻게든 타긴 했다. 그래서 대충은 탈 줄 알 거고 조금만 연습하면 다시 탈 수 있을 정도의 무언가이긴 한데... 자전거 도로로 나가는 게 겁이 난다. 자전거 연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초등학생 때 자전거 도로에서 그딴 식으로 탈 거면 자전거 연습장이나 가라며 욕을 퍼붓고 간 이름 모를 아주머니의 영향이 무의식에 남아 있는 걸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청년들이 느끼고 있을 미래에 대한 불안 또한 그런 막연한 두려움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어디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내가 할 줄 아는 게 무엇인지도,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거리낌 없이 도전하는 이들을 보면 저걸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나는 무언가를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시기와 주저하는 시기가 비정기적으로 반복되는 것 같은데 (후자가 압도적으로 길긴 하지만 말이다) 무언가 저지르는 시기에 타이밍 잘 잡아서 뭐라도 해봐야 할 것 같다. 일경험도 그렇게 시작되었고, Unlimit-Go 클라이밍 강습도 그렇게 듣게 되었지. 그래, 뭐, 분명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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