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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Nov 09. 2024

#66 자기 주관

2024년 11월 9일 토요일 갑진년 을해월 정축일 음력 10월 9일

이 글은 언젠가 서비스 종료된 플랫폼에 작성했던 글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기존에 작성된 글은 2022년 8월 7일 일요일에 작성되었다.


살다 보면 자기 주관 없이 살아가는 인간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그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타인의 의견만을 갈구한다. 한두 번이면 그저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해주겠지만 그걸 넘어서다 보면 일일이 반응해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싶기도 하고.


타인에게 많이 의지하고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 자체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러면서도 뚜렷한 자기 주관이 있길 바랄 뿐이다. 자기 주관을 가진 채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거라면 오히려 좋다.


언젠가, 본인 주관 없이 그저 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와서는 오직 나에게만 관심을 갖고 있는 이에게 불쾌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곳이 뭐 하는 곳인지는 알고 있는지, 거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은 있는지, 왜 굳이 이곳에 와서 저러고 있는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왜 그랬을까, 솔직히 난 그를 이해하길 포기한 지 오래다. 때로는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는 이해하길 포기한 채 그저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하고 받아들이고 넘어가는 편이 나을 수 있기에.


경험이 없고 어린 친구라면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어디 가면 연장자 취급받으며 "언니"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이었다. 이제 와서는 "이 정도면 남이지" 하는 사이가 되었으나, 나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쏟으며 나를 쫓던 때를 떠올려보면, 나이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던 평소의 나를 잊은 채 "저 인간은 나이를 뭘로 드셨나" 하게 된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자기 주관을 잃은 채 남을 쫓게 되었을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관찰해보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다시 인연을 쌓아가기엔 정말 삶이 피곤해질 것 같다.


지금쯤이면 내가 아닌 누군가 다른 적당한 사람을 찾아 그 누군가를 쫓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면 관찰하더라도 내 삶이 그렇게까지 피곤해지지는 않지 않을까... 라든가. 하여간 어떤 의미에서는 흥미로운 인간이다. 다만, 곁에 두기보다는 한 칸 건너에 두고 말로만 전해 듣고 싶은. 내 인생 밖에 두고 관찰하고 싶은 느낌? 책임 없는 쾌락이었으면 재밌었을 텐데... 하는 이야기.


함께 하고 싶은 이와 함께 한다는 건 정말 유쾌한 일이다. 다만 그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에 가는 게 아니라, 그곳에 가고 싶어서 갔는데 마침 그 사람도 있는 거였으면 좋겠다. 아주 오래전, 그 "언니" 소리를 듣던 누군가에게서 그것을 크게 느꼈다. 그 어떤 별칭도 붙지 못한 채 그저 남으로서 내 삶에서 사라진 존재. 아직도 가끔 연락이 오긴 하지만 잘 받지 않는다. 그와 상호작용하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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