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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휘 Nov 10. 2024

#67 예외

2024년 11월 10일 일요일 갑진년 을해월 무인일 음력 10월 10일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연속이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하고 주장하는 많은 것들이 삶의 중간에 예외 사항을 가지게 된다. 일시적인 현상이든, 특정 대상에게만 발현되는 현상이든, 혹은 변해가는 과정에서 드문드문 발생하다가 점차 늘어나는 현상이든 말이다. 때로는 완강하게 주장했던 무언가를 어떤 예외 사항에 의해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는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원래는 이런 녀석이 아닌데, 하면서도 어떤 예외적인 행동을 할 때면 왠지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는가. 천천히 생각해 보아도 대체로 그 답은 나오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나의 무의식이 그 답을 알고 있지만 부정하며 의식의 범위로 올려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대체 어떤 사실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요즘 대상에 따른 예외 사항을 보이고 있다고 내가 인지한 사람이 몇 있다. 한 녀석은 예전의 내 모습이 돌아오게 만든다. 내 삶이 멈추었던 중학생 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든다. 나에게서 약간의 장난기를 발현시킨 사람은 종종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나래만큼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난 나의 것을 잘 안 나누지만, 나래 정도면 소소한 간식거리 정도는 나눠줄 수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떤 녀석은 나로 하여금 보다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하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강해져야 해' 드라이버가 강하게 작용하는 만큼 스스로를 포장하고 실제보다 괜찮은 상태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드라이버의 이면에 존재하는 나의 모습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충분히 가까운 사람 중 극소수는 그런 모습을 접하기도 한다. 그런 대상의 기준은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보드게임을 안 좋아한다고 주장하던 녀석이 이제는 가끔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하러 가는 것만 봐도 현재 나의 친구 집단은 내 삶에 있어서 특이 케이스다. 지금까지 내 삶에 없던 무언가. 분명 작년 하반기부터 알고 지내던 이들인데 그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청년이음센터에서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청년기지개센터 출범 이후로 어느 순간 느끼게 된 걸까. 무엇이 이런 변화를 야기했을까. 센터에서 알게 된 다른 청년들은 내가 이곳으로부터 독립하게 되면, 그러니까 한 내후년쯤에는 자연스레 연이 끊길 것 같은데, 이 친구들만은 유의미한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예외 사항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고집을 가지고 살아가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올해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기도 하고 말이다. 삶에 없던 융통성이라는 것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세상은 결국 변하고 우리 생각도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유의미한 존재로 남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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