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휘 Nov 13. 2024

#70 자해

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갑진년 을해월 신사일 음력 10월 13일

자해 ― 자기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 물리적으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만을 말하는 경우도 많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정신적인 부분도 포함이다. 스스로에게 독이 될 걸 알면서도 하는 선택은 자해의 영역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일종의 자해라고 하더라. 그런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갉아먹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꽤나 많이 있다나.


물리적인 자해는, 최근에는 잘하지 않지만 학생 때는 가끔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한답시고 팔 안쪽에 상처를 입히고 긴팔로 가리고 다닌다고 하지만, 글쎄. 항상 긴팔만 입고 다닐 건 아니잖아? 그래서 난 계절과 무관하게 가려질 수 있는 손목시계 안쪽이 가장 최적의 위치라고 주장했다. 학생 때의 나는 단지 주장만 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 안 해, 안 한다. 저건 언젠가의 이야기다. 청년기지개센터 들어갈 때 서명했던 서약서에도 자해를 하지 않는다는 게 있었을 거다. 안 들키면 그만 아닌가 하는 소리를 하는 녀석은 저리 가도록 해라. 최근에도 스스로에 대한 파괴적인 충동을 억누르는 일이 있어 방심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튼 안 할 거다. 이런 걸로 센터에서 제명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뿐이다.


한동안 안 나오던 부정적인 충동이 최근에 발현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건 스스로를 통제하고 억누르던 부분이 지난 몇 개월 동안 친구들을 통해 조금 완화되며,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도 그 통제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애초에 그건 나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무의식이 그것을 억누르려다가 긍정적인 감정까지 같이 억눌린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그저 억누르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가야지.


정신적인 자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겉으로는 티가 잘 나지 않는 그 무언가. 자신의 행복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 솔직히 이건 물리적인 자해와는 달리 스스로 막기도 쉽지 않고 주변에서 막아주기도 쉽지 않다. 정신건강이 악화될수록 통제하기 어려워지고, 그러한 정신적인 자해는 정신건강을 갉아먹으니 악순환이 이루어질 확률도 높다. 어떤 의미에서는 물리적인 자해보다 정신적인 자해가 더 위험하다.


내 행복을 등지는 행위. 가끔, 아주 가끔은 나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을 거부하는 일이 있다. 왜 그런 선택을 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은 없다.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알고, 그것을 선택하는 편이 나에게 더 이롭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다른 선택을 해버린다. 그것이 일종의 정신적 자해라는 것 또한 안다. 가끔은 나에게 다시 한번 묻고 또 묻는 나의 친구에게 거짓을 고하면서까지 그런 선택을 하곤 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또 그러고 있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