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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다니 Apr 12. 2018

이런 인연이



살면서 놀라운 인연에 소름 돋은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친한 동네 친구와 학교가 갈라졌는데 각자 새로운 학교에서 친해진 친구가 알고보니 서로 베프였을 때. 또 서로 일면식도 없던 나의 초등학교 친구와 고등학교 친구가 같은 대학의 같은 과에서 각자 복수전공과 편입을 하게 되어 내가 서로 연결해주었는데, 지금은 또 다른 지역에서 나란히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것. 회사 과장님의 아내 분이 아는 작가와 같은 작업실을 공유하던 작가님이셨다거나, 또 다른 사수님의 지인의 아내분과 같은 대학원 동기가 되었다거나 하는 그런 일들. 게다가 회사 사수님의 아주 친한 동창이 교회 집사님인 경우까지. 이런 일들은 지역이 같고 업종이 비슷하니 세상 좁다 하면서 그럴 수 있다 쳤지만 최근에는 더 놀라운 인연을 알게 되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나는 긴긴 세계여행을 가기 위해 루트를 짜고 계속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여행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여행 정보를 제공해주시던 친절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분에게 나도 가끔씩 질문을 드리고 조언을 구하곤 했었다. 최근에 다시 긴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막막한 마음에 내가 어설프게 짠 루트를 보여드리며 그분께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홀로 떠날 여행이 영 외로워서 함께 하자고 사촌언니를 꼬시는 중이었는데, 알고보니 먼 유럽에서 일하고 있던 그 분이 사촌언니의 대학 후배였다. 이 인연이 신기해 나중에 여행을 떠나면 그 분이 계신 곳에 꼭 찾아가기로 했다. 언젠가는 셋이 함께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연의 힘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꼭 가고 싶은데 동행 없이는 여행이 힘들거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었다. 웬만한 여행 카페는 아직 가입도 제대로 안한 상태라 적극적으로 동행을 구할 처지도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오랜만에 블로그 이웃들의 새글 피드를 보는데, 전에 사진이  이웃을 맺어둔 분이 올해 가을에 아이슬란드를 함께 동행할 여자를 구한다고 쓴 것을 발견했다. 나는 두 눈을 의심하며 글을 다시 읽고 댓글을 살포시 남겼다. 다음 날 바로 반가운 연락이 와서 그렇게 우리는 동갑내기 친구이자 예비 여행 메이트가 되었고, 지금은 두 명의 동행자를 더 얻어 함께 여행을 갈 계획을 신나게 세우고 있다.



이런 놀라운 인연을 뒤로 하고, 사실 내가 요즘 정말로 놀랍게 느껴지는 인연은 10년 혹은 20년, 이제는 30년을 향해 달려가며 나와 계속 얼굴을 마주치고 있는 나의 소중한 인연들이다. 우리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이 매일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가끔씩 혹은 오랜만에 그들과 만나게 되는 시간은 나를 잊고 있던 그 어느 때로 순식간에 데려가준다. 때로는 너무 오랜만에 만나 한참 옛날 이야기를 떠들다 보면 사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무엇이 고민인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등의 이야기는 미처 나누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함께 나눠온 시간만큼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별로 아쉽지만은 않다.


시간 참 빠르다- 하며 한숨 섞인 이야기를 뱉는 순간에도 사실은 그 이야기를 들어줄 이가 있어 감사하다. 그 긴 한숨보다도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않은 이는 공감해줄 수 없으니까. 어린시절 수줍게 내게 말을 건네던 친구가 어느 새 아기 엄마가 되고, 그녀의 십 몇년의 연애의 역사를 곁에서 지켜보던 걸 떠올리며 마치 장편 드라마를 보는 것 같고, 가끔씩 현실의 대화에 지칠 때 초콜릿처럼 꺼내 먹을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 그 소중함-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알고 지낸 이들과 끊임 없이 남은 시간을 함께하는 일도 참 소중한 일이다. 내가 망설임 없이 바다 건너 낯선 땅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이유도 그래서이고, 가끔씩 뜬금 없는 연락을 하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사실 믿지 않는다. 인연에는 분명히 마음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인연이 쉽게 만들어지는 거라면 그 인연이 끊어질 때 별로 아프지도 않을 거다. 소중했던 인연수록 이별이 아픈 건 당연하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인연의 법칙이라 하지만 그것을 덤덤히 받아들이기란 정말 쉽지 않으니까-



소중한 것은 소중하게 대하기.

소중한 것을 소홀하게 대하지 않기.


그것이 나의 소중한 인연을 오래도록 지키는 방법이란 걸 잊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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