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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다니 Mar 24. 2016

삼월이다

새롭지만 낡은



3월이다.

1월에 굳게 다짐했던 계획들이 무너졌어도 '시작'이라는 단어를 보험처럼 다시 슬쩍 꺼내볼 수 있는. 때마침 봄도 오려하니 마음도 적잖이 싱숭생숭해지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꽃샘추위에 다시 웅크러져서 모든 것이 귀찮아져버리는 그런. 3월이다.


그런 3월의 첫날에 난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하나 장만했다. 몇달 간을 찾고 뒤지다가 결국은 발품을 팔기로 작정하고 서울로 향했고, 우연한 기회로 좋은 가격에 원하던 카메라를 드디어 구해냈다. (매번 새로운 카메라를 살 때마다 그랬지만) 나는 정말 몸이 붕 뜬 것처럼 날아갈 듯 기뻤다.



그러나 3월이었으므로, 봄이 올 것 같은데 도통 오지 않고 밀당만 하고 앉아있는 3월이었으므로 나는 곧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귀찮으면 안 해야 마땅한데 난 언제나 귀찮지만 기어코 하고야 말았다. 내겐 귀찮기 때문에 안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귀찮음에 대한 예의니까. 그러나 나는 새로 장만한 낡은 필름카메라에게 더욱 예의를 지키기로 했다.


약 3주간 그 카메라를 주머니에 쏙 넣고다니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총 세 통의 필름을 찍었고, 80여번의 셔터를 눌렀고, 일곱명의 지인들을 만났다. 몇몇 사진은 흔들리고 초점이 빗나가서 마음에 안 들었지만 또 몇몇 사진은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 내게 디지털이 판을 치고 인공지능을 운운하는 스마트한 이 시대에 왜 아직도 오래된 카메라 타령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난 그냥 이렇게 대답하려 한다.


"느낌 아니까."


3월이 다 지나기도 전 결국, 나는 또 필름을 20통이나 주문해버리고 말았다. 다음 필름에는 조금 더 따뜻한 봄이 담겨있겠지. 새롭지만 낡은 내 친구의 눈을 통해서 말이다.


앞으로도 기대할게.

네 이름은 이제 삼월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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