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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다니 Mar 14. 2016

방황에서 방랑으로,

나의 2014



3천 원짜리 노트 한 권 들고 서울을 오가며 부지런히 공부했던 1년이었다. 그렇게 가고자 했던 서울을 지겹게도 쏘다녔고, 그 때문에 '떠나고 싶다'는 말도 가장 적게 떠올렸던 올해였다. 한 해는 겨울로 시작해서 겨울로 끝이 난다. 그래서 겨울은 차갑지만 설레고, 후회스럽지만 따뜻하다.


올해 초의 겨울엔 많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아팠던 기억'으로 요약되는 것이 참 허무하면서도 감사하다. 굳이 돌이켜보자면, 봄이 오기 전 꼬박 두 달 동안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팠다. 난생처음 링거도 맞아봤고, 매일 통증 일기까지 썼었는데 그걸 보면 지금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통증은 나를 참 간사하게 만들었다. 아프다가 살짝 통증이 사라지면 살 것 같았고, 다시 통증이 찾아오면 정말 죽고 싶었다.


그렇게 매일 일희일비하며 방 안에 꼭꼭 숨어 겨울을 나고, 3월, 그리고 봄이 왔다. 거짓말처럼 몸이 뿅 하고 나았다. 그리고 26살 봄에 내 인생의 첫 독립생활이 시작됐다. 대학 시절에 너무 나가 살아보고 싶어 기숙사에 한 달 산 적이 있는데, 그땐 빨래도 집에 와서 하고 했으니 무늬만 독립이었던 거다. 서울시 동작구 상도1동 프라임 고시텔 2층에서 비로소 나의 진짜 첫 독립이 시작됐다.


일주일에 11개의 수업을 들으며 부지런히 공부했고, 수업이 없는 날엔 서울에 있는 모든 궁을 쏘다녔다. 마침 올해까지만 내 나이로 공짜 입장이 가능했다. 처음엔 밥 하는 것도 세탁기를 돌리는 것도 많이 헤맸지만 그런 건 금세 익숙해졌다. 살짝 외로웠지만 포근한 봄이었다. 제일 잘했던 것은 역시 꾸준히 일상을 기록했다는 거다. 그땐 별거 아니었던 일들도 이제와 돌아보니 모두 새롭다.


그렇게 약 100일간의 독립생활이 훅 지나갔고, 나는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대전이 그리웠던 걸까. 나는 열심히 또 대전을 쏘다녔다. 무대포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불쑥 다가가 말을 걸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백수만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했다. 취재 명목으로 여기저기 강연을 찾아들으러 다니거나 전시를 구경하고 다녔고, 과제 명목으로 하루 종일 집에서 영화를 보곤 했다. 간간이 누군가를 따라서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럼에도 후회되는 것은 책을 생각보다 많이 읽지 못했던 것과 부산 국제 영화제를 끝끝내 가지 못했다는 거다. 아, 그리고 해금을 배우다 만 것도. 그래도 몇 년 간 미루었던 자격증 실기시험도 붙었고, 공모전도 도전해본 덕분에 언젠가 쓸 이력서 몇 줄을 채워뒀다. 빈둥거렸던 것만 같은데 여기저기 전시 기회도 많았다. 캘리그라피, 독립출판물, 사진까지. 잡다하게. 엄마의 꿈 덕분인지 그래도 하반기에는 일감도 종종 생겼다. 덕분에 백수와 프리랜서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나갔다.

 

2014년 12월. 올해의 마지막 달을 살고 있는 지금. 돌아보니 다행히도 나의 방황했던 1년은 자유로운 방랑으로 잘 미화된 것 같다. 다시 겨울이 되어, 내년의 행보가 또 걱정이지만, 나를 도우시는 주님이 계시고, 주님이 보내주시는 좋은 분들이 앞으로도 많을 거라 믿기에 두렵진 않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삶은 다행(多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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