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에게 그만 사과하기를
이따금씩 어떠한 통증이 찾아오고 나면 난 글을 썼다. 그래서인지 내 글은 대개 아팠었다는 이야기들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눈물겨운 감동을 받거나 진한 사랑을 받았을 때나 주체할 수 없이 기뻐서 쓴 글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기록에 의지한 내 기억은 늘 절망과 희망 그 어디쯤에 애매하게 놓여 길을 헤맸다. 가슴이 벅차올라 감정을 추스리기 어려울 때 '지금 이 느낌을 그대로 써둬야지' 하고 늘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내가 글을 끼적이고 있을 때면 이미 감정은 이성의 체에 걸러진 후였다. 이제와 그것들이 아쉽고 후회된다. 내 감정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이미 지난 일이니까 지금부터라도 잘하자고 다짐할 뿐이다.
일이 바쁘고 새로운 취미가 생긴 것과는 별개로 난 무료했다.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한달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달력을 쑥쑥 넘기고 있으면서도 순간순간 나는 공허함을 느꼈다. 무엇으로도 채우기 어려운 아주 묘한 지루함이었다. 일종의 권태로움이었을까. 그러다 통증이나 아픔이 찾아올 때 삶의 의지를 다시금 불태우곤 했으니 어쩌면 다행인 일이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세상에 그냥 벌어지는 일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라 웬만한 슬픈 감정들은 무덤하게 넘기곤 하던 내가 세상 다 잃은 사람처럼 펑펑 울었으니까.
나는 확실히 통증에 약했다. 누가 통증에 강하랴마는 나는 유난히 약했다. 가슴 아픈 일은 금방 털어낼지라도 지금 당장 쑤시고 고통스러운 통증은 도무지 견뎌내기가 어려웠다. 며칠 새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 작년에 수술했던 부비동염이 도져서 결국 병원를 찾았다. 우울하고 절망스러웠다. 그러나 다행히 고독하진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픈 왼쪽 얼굴을 쥐어잡고 있다가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이불빨래를 걷으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몇 개의 겨울이불들이 널려있는 다락방에 앉아 몇 자의 긴 글을 읽고는 한참을 울었다. 비가 내려서 울었는지 내가 울어서 비가 내렸는지 모르겠다. 빗소리와 함께 서럽고 고맙고 벅찬 나의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 방안을 울렸다.
덕분에 코가 더 막혔고 눈이 퉁퉁 부었고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었을까. 여유 없는 일상 가운데서 내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린 것이 감사했다. 앞으로 견디기 어렵고 슬프고 답답한 일들이 계속될 것이다. 내 지난 행복했던 시간들이 그 일들에 가려져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지난 날들을 기억하려 애쓸 것이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기록할 것이고 두고두고 추억할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비웃는다 할지라도 내 감정에게는 나라도 진실해야 하니까. 더이상 나의 행복한 시간들에게 미안하지 말아야지. 내일부터는 심심할 틈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