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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다니 Mar 14. 2016

어느덧 또 십이월.

2015년 12월 3일의 일기



12월은 늘 그랬다. 더이상 넘길 곳 없는 그 해의 달력 한장을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다음해의 달력에 달린 작년 12월 달력으로 갈아타기 일쑤였고, 일찌감치 구입해둔 새 다이어리를 자꾸만 꺼내어 깔끔한 글씨로 무언가라도 적고싶은 욕망에 마음이 괜히 분주했다. 올해 아니 몇년 째 계속 지키기 못했던 계획들을 그대로 새 다이어리에 옮겨 적어놓고는 이젠 무리한 계획을 세우지 말자 다짐했던 지난 날들도 새하얗게 잊어버렸다. 새해를 기다리는 마음은 두렵고도 설레는 일이므로 12월에는 항상 두 마음이 공존했다. 반성모드와 감사모드가 오묘히 교차되어, 변덕스런 12월의 날씨처럼 기분도 항상 롤러코스터를 탔다.


올해는 유난히 더 심하다. 그 때문에 이런 마음을 품고 다니는 내 몸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잘 참아왔던 감기가 걸렸고, 여름내 아팠던 것의 후유증인지 연쇄적으로 몸의 여러 곳곳이 삐그덕거리고,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도망증(자꾸만 어디로 도망가버리고 싶은 증세)이 동시에 찾아오고 말았다. 이럴 땐 그저 잠잠히 기도해야하는 걸 알면서도 뿔난 몸과 마음이 착실하게 말을 들을리 없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늘 자부하면서도 어쩜 20여년이 훌쩍 넘도록 아직까지 이런 돌발상황 대처 매뉴얼조차 없는지. 하지만 또 이렇게 끼적끼적하다보면 마음이 풀리는 나라는 걸 내 손가락이 알아서 이 바쁜 와중에도 무언가에 홀린 듯이 필사적으로 글을 써내려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올해는 참 많은 일들이 내게 벌어졌다.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일들도 많았고 일일이 다 기록하기엔 부끄러운 일들도 참 많았다. 이제는 벌써 30대가 코앞이라며 한탄스러워 하지만 돌아보면 아직도 난 한참 어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년 전 이맘 때쯤에 썼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2014년 12월. 올해의 마지막 달을 살고 있는 지금. 돌아보니 다행히도 나의 방황했던 1년은 자유로운 방랑으로 잘 미화된 것 같다. 다시 겨울이 되어, 내년의 행보가 또 걱정이지만, 나를 도우시는 주님이 계시고, 주님이 보내주시는 좋은 분들이 앞으로도 많을 거라 믿기에 두렵진 않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삶은 다행(多幸)이다."


일년 전의 나는 올해의 내 모습을 걱정했지만, 나를 도우시는 주님을 믿었기에 다행히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고, 잊지 못할 경험들을 많이 했다. 일년 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의 난 내년의 내 모습이 걱정되거나 염려스럽지는 않다. 해야할 일이 정해져 있어 덜 불안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름 한층 성숙해졌달까.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시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의 주님은 절대 안 좋은 길로 날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나약한 존재다. 한 여름의 뜨거웠던 열정은 눈보라와 함께 차갑게 식어지고, 어느새 갈라진 마음의 틈 사이로 불평이 스멀스멀 새어들어간다. 그래서 난 굳이 환자복을 입고 수술 직후 찍었던 내 사진을 늘 볼 수 있도록 휴대폰에 띄워놓았었다. 하지만 그 효과도 잠시 뿐이었다. 결국은 늘 새로운 자극과 작심이 필요하다. 그 마음가짐이 단 3일밖에 못 갈지라도- 작심하기에 12월 만큼 좋은 달은 없다. 그래서 지난 날의 내 모습을 쿨하게 잊어주기로 하고, 새로운 달력과 새로운 다이어리를 펼치며 조심스레 깔끔한 글씨로 새로운 계획들을 적어내려가 보는 거다.


이렇게 나를 돌아보다 보면 어느새 보고픈 얼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사는 게 뭐 그리 바쁘다고 얼굴 한 번 보기는 커녕 연락 한 번 먼저 하기가 어렵다. 일년 내내 시간이 밀어내는 대로 정신없이 달리다가 달력의 마지막장에 다다르면 그제서야 아차 하며 그리운 얼굴들을 죄스럽게 떠올린다. 변명같지만 먼저 연락하기 전에 수십번을 고민하는 성격이라 끝끝내 연락하지 못할 때가 많기에 (특히 잘지내? 뭐해? 등등의 뜬금없는 연락) 먼저 내게 연락을 주는 사람들에겐 참 고맙다.


내년엔 더 잘해야지. 나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매년 12월이면 늘 습관처럼 하는 다짐이지만, 이 다짐조차 하지 않고 새해를 맞이해 버리면 너무나 찝찝하기에. 그리고 어차피 12월은 마음이 넓은 달이니까. 올해도 어김없이 다짐하고 작심한다. 내년엔 조금 더 잘 하자. 올해보다 조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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