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잘 지내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다니 Mar 14. 2016

기적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015년 7월 17일의 일기






난생처음 입원이란 걸 해보고, 환자복이란 걸 입어보고, 수액이란 걸 맞아봤다. 누군가의 병문안을 다닐 때마다 환자복을 입고 수액을 꽂은 채 힘없이 걷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내가 그 안쓰러운 눈빛을 받으니 너무나 어색했다. 필요한 연락을 돌리고, 일주일 간의 살림살이를 잔뜩 가져다가 오롯한 침대 옆 나의 공간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그렇게 난 순식간에 환자가 되었다.


그리고 입원한 지 48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난 갑작스레 퇴원을 했다. 토요일에 입원을 하고 난 뒤 월요일 회진 때, 주치의는 내게 "아픈 데 있어요? 입원생활 힘들죠? 퇴원해요."라고 말했고 나는 내 귀를 의심해 퇴원하라는 얘기를 세 번이나 듣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기적이었다. 별다른 검사도 없이 같은 CT촬영 사진을 보고 퇴원하라는 거였으니 기적으로밖에는 설명이 안 되었다.


대신 한 달간의 근신 명령을 받았다. 퇴근 후엔 누구도 만나지 말고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기만 하라는 주치의의 말씀에 난 격하게 끄덕이며 신이 나서 퇴원수속을 곧바로 밟았다. 정말이지 입원한 며칠 동안은 통증이 전혀 없었다. 전날 밤까지 아프던 건 생각 못하고 난 멀쩡한데 왜 환자복을 입고 여기에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다. 어쨌든 기적같이 민망한 퇴원을 하고,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퇴원 후 며칠간도 통증이 없었다. 저녁이 되면 조금 지치긴 했지만 이만하면 살만했다. 감사가 넘치고 행복했다. 통증이 있을 때만 먹으라고 주신 약도 아껴둘 수 있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어젯밤엔 통증이 살짝 다시 찾아왔다. 잔잔한 호숫가에 돌멩이가 떨어진 듯 평안했던 마음이 또 한 번 일렁였다. 인간은 이렇게나 나약한 동물이었다. 난 슬퍼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이전의 날들처럼 일희일비하며 살고 싶진 않았다. 기도가 필요했다. 기도 없이는 괴로운 시간들을 버틸 재간이 없었다. 나에게 찾아오는 통증이 ㅡ감히 비하 건대ㅡ 마치 바울의 가시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말한 바울의 고백이 떠올랐다.


문득 몇 년 전에 썼던 내 일기를 보게 되었다. '아파봐야 나아도 보지. 슬퍼봐야 눈물도 그치지. 우울은 바로 그대의 선택이란 걸 그대는 아시는지. 이제 그만하시지.' 나는 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통증이 사라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으로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