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잘 지내니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다니 Jul 19. 2017

오랜만이야

서른이 다가와도 서럽진 말자고



좋은 이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오랜만이라는 단어는 입술로 그 소리를 낼 때마저 애틋해진다. 만남과 만남 사이의 무수한 시간들을 품고 있는 단어여서인지 그 말을 뱉을 때는 나도 모르게 긴 호흡과 여운을 싣게 된다. 반가운 얼굴을 보러 가는 설레는 발걸음도 숨길 수 없다. 그 들뜨는 기분에 유난히 마음이 종일 소란스러웠다.


살다보니 정신 없이 시간이 지나서, 워낙 뜬금없는 연락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서로 맞는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서 등 핑계는 많았지만 그 모든 장애물을 뚫고 기어이 성사시킨 만남은 실로 소중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어차피 우리의 만남은 앞으로도 늘 오랜만이 될 것이란 걸. 그래도 이렇게 가끔씩 서로의 안부를 묻고, 치열했던 삶의 순간들을 축약하여 나눌 때의 허탈함과 묘한 희열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 간의 삶에 대한 성적표와 보상을 받는 것 같기도 했다. 과정이 어쨌든 이미 지나간 일, 서로를 다독여주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서로가 자주 마주하며 함께 해왔던 오래 전으로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가면 어김없이 즐거웠다. 마치 정말 그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마음이 붕 뜨곤 했다. 기억의 왜곡이 어찌 없겠냐마는 우리는 각자 기억의 조각을 끼워맞추며 퍼즐을 완성시켜 갔다. 힘들었든 좋았든 모든 이야기들은 채도가 뚝 떨어진 탁한 그림 같았다. 특별히 빨갛지도 파랗지도 않은 회색빛의 아주 두루뭉술한 그림. 모든 일은 결국 그리 되었다.


그러다 문득 현실로 순간 이동 해오면 어쩐지 괜히 공허했다. 지금 살고 있는 각자 삶의 모습들이 징그럽고 소름이 돋기도 했다. 그 시절 서로를 바라볼 땐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삶이 딱히 놀라울 일도 아니라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건가 하고, 또 모두가 그렇게 늙는 건가 했다.


서른 즈음을 살며 느끼는 감정들은 낯설지만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내가 이 좋은 이들과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며 이만큼 살아왔다는 대견한 마음과 함께 웃으며 추억할 일들이 많아졌다는 부유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런 기분에 취해 서른쯤이야 당장 다가와도 웃으며 맞이하겠노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가면 그 다음 문턱은 더 빨리 다가올 것이란 걸 수없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런 날엔 왠지 아주 쿨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른이 다가와도 서럽진 말자고.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의 결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 이 곳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