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by 다은

앞선 에피소드에서 18개월짜리 지후 앞에서 폭발해버린 내 모습을 보고 신랑이 내 마음에 공감해주지 않고 내 실수만 탓해서 서운했다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당시 신랑은 아직 말귀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18개월짜리를 상대로 내가 폭발한 것에 대해 질타를 했었다.


그런데 지후가 36개월(만3세)이 지난 이후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지후의 월령이 높아지면서 어느 정도 말이 통하고 자신의 의사를 문장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집에서 부대끼는 시간이 줄어들었으며, 결정적으로 내가 둘째를 임신하게 된 것이다.

지후는 ‘미운 네 살’이 된 데다 동생까지 생겨 ‘아우 타기(동생이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빼앗길까 염려하며 퇴행 행동을 하거나 떼 부림이 심해지는 것)’를 심하게 하면서 떼 부림이 극에 달했다. 18개월 이후 최고의 고비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나는 지후가 우리 부부의 사랑을 오롯이 받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과 동생이 태어났을 때 지후가 겪을 상실감을 염려해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지후의 떼 부림을 참아냈으며, 지후를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 한 숨 돌렸다가 다시 오후에 지후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신랑도 지후가 동생이 태어나면 겪게 될 상실감에 대해 염려하고 안타깝게 생각했으나, 지후의 떼 부림 정도가 너무 심하다보니 신랑은 매일 매일 저녁 지후의 목욕 시간마다 폭발하고 지후에게 큰 소리를 치게 됐다. 신랑은 본인의 의사를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지후가 악쓰고 울면서 떼 부리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매일 폭발해버리는 신랑에게 “왜 자꾸 아이랑 싸우느냐”며 한숨을 내쉬었고, 신랑은 “그럼 이게 화가 안 나게 생겼어?”라며 되받아쳤다. 그런 신랑에게 나는 공감보다는 인내를 요구했다. “그래, 화가 나지, 근데 자기 지금 지후랑 시간 보내는 거 두 시간 밖에 안 됐어. 그걸 생각해.”

지후가 깨기 전 신랑이 출근을 하다 보니 하루에 지후와 신랑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퇴근 후 세 시간 쯤. 즐겁게 놀기만 해도 세 시간은 짧다고 느껴지는데 아빠와 보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빠가 폭발적으로 화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싫었다. 게다가 나는 임신 중이라 감정 기복이 심하고 체력도 달리는 와중에 최대한 참아보려 하는데 아이 아빠인 신랑이 나만큼 노력하지 않는 것 같아 짜증이 나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신랑에게 일방적으로 참아내기를 요구한 뒤 나도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니었고 결국 신랑도 회사에 출근하고 나서는 “이젠 안 그러도록 해볼게”라며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과거의 내가 신랑의 이성적인 태도로 인해 상처받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신랑의 힘듦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해준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럴 땐 신랑에게 “자기도 고생하는 거 알아”, “자기 정도면 잘 하는 편이야”라며 위로를 건네서 내 미안함과 민망함을 덜어내곤 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는 않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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