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해버리다

by 다은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면 ‘마의 18개월’이라고 불리는 시기를 거치게 된다. 그 시기를 실제로 겪기 전까지 나는 그것을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옛 이야기 쯤으로 치부했었다. 그리고 실로 그 시기가 내게 온다 한들, 나는 그것을 잘 넘겨낼 자신이 있었다. 나는 대학원에서 아동심리를 전공했고, 아동의 심리를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니까.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자만이었다. 나는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는데, 일로써 만나는 아동에게는 대체로 객관성이 유지 되지만 내 아이에 한해서는 그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주 어렵다는 것이 그것이다.


지후가 18개월에 진입한 어느 날. 그 날도 어김없이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떼를 부리고 악을 쓰는 지후와 하루 종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사소하고 새로운 요구를 계속 반복하는 지후를 상대로 최대한 참고 맞춰주고 들어줬는데, 나중에 가서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때는 저녁식사시간이었는데, 이미 하루 종일 씨름한 것이 쌓인 데다 밥까지 먹지 않고 밀쳐내는 지후를 마주하니 결국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개수대에서 지후가 요구하는 바를 찾아 이것저것 시도해보다 지친 나는 “나도 이제 몰라! 네가 알아서 해!”하고 지후에게 소리를 빽 지르고 손에 들고 있던 플라스틱 컵을 개수대로 던지고 말았다. 컵이 내 손에서 떠나가는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나는 자제력을 잃은 상태였다. 그런 나를 보고 지후는 집이 떠나가라 더 크게 울어 댔다.


방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신랑은 상황이 너무 심각해지는 것을 눈치 채고 방에서 나왔고, 그가 방에서 나오는 순간 마주한 장면이 바로 내가 컵을 던지는 장면이었다. 이 상황을 TV 드라마에 비유하자면, 신랑은 초반 스토리와 갈등이 전개되는 상황을 보지 못한 채 그냥 채널을 돌리다가 가장 강렬한 클라이맥스가 방영되고 있는 순간에 드라마의 시청자가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엄마’라는 등장인물이 이전까지 겪어왔던 에피소드나 감정이 마음에 와 닿았을 리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상식 수준에서 지극히 이성적으로 말했다.

“그래도 애 앞에서 그러면 어떡해...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우리가 참아야지.”

그가 큰 소리를 친 것도 아니고 그저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지만, 조용한 말투와는 달리 그의 눈에는 비난이 담겨 있었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를 상대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질타.


나도 알고 있었다. 이미 이성을 잃은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너무 과도하게 반응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그 날의 기억이 너무 미안하고 스스로에게 부끄럽기에 그 이후 아이 앞에서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아직까지는) 다시 반복한 적도 없다.


당연히 나는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신랑의 말은 당연히 옳은 말이지만, 신랑이 그 말을 하는 순간에 나는 정말로 실소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혹독한 다이어트를 해오다가 정체기를 맞이하게 된, 그러다 결국 음식의 유혹에 굴복하고 만 다이어터에게 “다이어트는 이것만 지키면 되잖아. 식단 70, 운동 30. 쉽지?”라고 말하는 것 같달까.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사람이 그 이론이나 방법을 몰라서 실패하는 걸까?

아이에게 폭발하는 엄마가 ‘어린 아이는 표현 언어가 미숙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 폭발할까?


이성이 마비 된 나는 그냥 안방으로 들어갔고, 바깥의 상태는 신랑이 마무리했다.

홀로 앉아 잠시나마 시간을 가지고 나니 뜨거웠던 머리와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반대로 마음 한 구석이 차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지후가 목청껏 소리 지르며 악 쓰는 것,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요구하며 고집 부리는 것을 매일매일 숨처럼 마주하는 나. 그 장면을 퇴근 후 잠깐이나 주말에 토막토막 마주하는 신랑.

우리 둘이 느끼는 스트레스(혹은 당시의 나에겐 고통)가 같은 수준일 것 같은지 묻고 싶었다.

내가 그 순간에 당신에게 바란 것이 고작 육아코칭인 것 같았는지도 묻고 싶었다.


나는 나보다도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았고, 아이의 마음과 욕구를 세심하게 살피며 돌봐왔어.

그런데 왜 고작 이 한 가지 일만 가지고 내가 당신에게 그런 질타를 받아야 해?

당신의 눈에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 하기 위해 ‘나’으로서 많은 것들을 포기해버린 나는 보이지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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